생활일반
[교사 김혜인] 올해 추석을 낀 황금연휴는 드물게 길어서 일찍부터 설렘과 부담을 안은 채 맞이했다. 연휴 전날 퇴근 인사는 평소보다 긴 법이다. 덕담을 나누며 서로의 일정을 묻는다.
한 동료는 퇴근 후 바로 저녁 비행기를 타고 해외 여행을 간다고 한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와 내내 수영을 즐기다 올 계획이란다.
우리 아이는 언제쯤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당장은 기차만 탈 수 있어도 좋겠다. 서해 금빛열차나 백두대간 협곡열차 여행을 잠시 머릿속에 그려봤다.
아이는 한때 매일 기차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기찻길 옆 오막살이" 동요를 불렀다. 기차 타는 걸 좋아하리라 여기며 마음 먹고 기차역에 데려갔다.
아이에게 즐거운 여행 과정의 일부가 되도록 플랫폼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가장 좋아하는 간식도 사줬다. 구경만 하기엔 아쉬워서 대기 중인 기차에 잠시 올라 보고자 했다. 그러나 거창한 과정을 거친 소박한 목표는 실패했다. 젤리도 초콜릿도 통하지 않는 필사적인 거부 반응만 실컷 경험하고 돌아왔다.
아이는 실제 기차는커녕 아주 작고 시시한 기차 놀이기구에도 타지 못한다. 아이와 자주 가는 쇼핑몰엔 기차 놀이기구가 있다. 언제든 태울 수 있게 500원짜리 동전을 두둑히 챙기지만 2년째 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 발 한쪽도 올리지 않는다.
하긴 기차가 웬 말이냐, 아이는 아직까지 버스조차 못 타는데 말이다.
아이는 버스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모습을 많이 구경한다. 그러나 내가 "우리도 타 볼까?"라고 말할까 봐 신경을 곤두 세운다. 무슨 말이라도 할 조짐을 보이면 얼른 뒤돌아서 정류장으로부터 멀어진다.
용감하게도 또 무작정 아이를 안고 버스에 타 봤다. 아이가 의자에 앉지 않고 울면서 내게 매달리기만 하는 통에 진땀을 흘리다가 서너 정거장만에 서둘러 내렸다.
바깥 놀이하기에 딱 좋은 10월인데, 연휴 삼일째 계속 비가 내려서 괜히 기차역에 갔다. 남편이 탐탁치 않은 듯 걱정하는 듯 복잡한 기색을 언뜻 내비쳤다. 그래도 우리는 아이 앞에서는 늘 가장 신나는 모험을 떠나는 것처럼 행동한다.
외지고 한산한 기차역에 도착했다. 운 좋게도 기차가 대기 중이었다. 우리 부부는 기차를 처음 보는 양 연신 "우와!" 하고 감탄하며 아이를 안고 기차에 살짝 올랐다. 어라, 아이가 가만히 있는다. 게다가 응당 그래야 할 것처럼 의자에 앉는다.
이렇게 쉽다고? 이 놀라운 순간을 기록하고자 연신 사진을 찍었다. 다음 행선지는 이름조차 낯설었지만 어디든 그냥 가 보자. 어리둥절한 희열과 긴장을 안고 남편에게 말했다. "돌아오는 길엔 버스를 타 볼까?"
이날 우리는 7분 기차 여행과 20분 버스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기차역에 세워 둔 차에 타자마자 아이가 깊은 낮잠에 빠졌다. 아까 찍은 사진을 하나씩 살펴보니 모든 사진마다 아이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남편도 알게 모르게 긴장했던지 피로를 호소했지만, 당장 어디어디를 여행하자고 말하는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나도 이른 낮잠이 몰려 왔다. 오늘은 정말 잠깐이었지만 7분이 곧 70분 되고, 7시간이 되겠지.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다. 서해 금빛열차와 백두대간 협곡열차와 경주 버스투어. 베트남 종단버스와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그리고 또...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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