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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링 전설’ 헐크 호건 심장마비로 사망, “미국 애국심의 상징”[해외이슈](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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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 호건./게티이미지코리아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프로레슬링의 전설’ 헐크 호건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71세.

24일(현지시간)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호건은 이날 아침 심정지로 사망했다. 구조대가 응급처치를 했지만 병원으로 이송된 뒤 사망 판정을 받았다.

본명 테리 진 볼레아(Terry Gene Bollea)인 호건은 플로리다에서 자랐다. WWE 명예의 전당에 오른 그는 주제곡 ‘리얼 아메리칸(Real American)’에 맞춰 등장하며 레슬링계에서 미국의 애국심을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 초, ‘아이언 시크(Iron Sheik)’를 꺾고 ‘헐크마니아(Hulkamania)’ 열풍을 일으킨 경기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세계 레슬링 연맹(WWF)의 헤비급 챔피언이 됐다.

24인치의 두꺼운 팔뚝을 가진 헐크는 경기 시작 전 셔츠를 찢어버리는 퍼포먼스로 유명했다.쓰러진 상대 선수 위로 점프해 공중에서 다리 전체에 몸무게를 실어 떨어뜨리는 필살기 ‘레그 드롭’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1988년에는 ‘앤드레 더 자이언트’와 명승부를 펼쳤다. 이후 호건은 1990년대에 스테로이드 논란으로 WWF(현 WWE)에서 물러났다. 같은 시기 그는 연기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82년 영화 ‘록키3’를 시작으로 1990년 ‘그렘린2’, 1991년 ‘서버번 코만도’, 1993년 ‘미스터 내니’, 1996년 ‘산타 위드 머슬스’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다.

WWE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WWE는 명예의 전당 헐크 호건의 사망 소식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대중문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한 명인 호건은 1980년대 WWE가 세계적 인지도를 얻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가족, 친구, 팬들에게 애도를 전한다”라고 추모했다.

호건은 1994년 WWE의 라이벌 단체 WCW(월드 챔피언십 레슬링)로 이적했다. 1996년에는 ‘헐리우드 호건’이라는 악역 캐릭터로 재등장했고, 2000년대 초 다시 WWE에 복귀했다.

2012년에는 호건이 친구 ‘버바 더 러브 스펀지’의 아내였던 헤더 클렘과의 성관계를 담은 영상이 온라인 매체 고커(Gawker)를 통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호건은 고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억 4,000만 달러(약 1,924억 원)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이 사건은 고커의 폐쇄와 함께 온라인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호건은 2005년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지만, 2015년 또 다른 성관계 영상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며 명예가 철회됐다. 이후 2018년에 복귀가 허용됐다.

헐크 호건./게티이미지코리아

정치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헐크 호건의 사망 소식에 애도를 표했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호건은 전 세계 팬들을 즐겁게 해줬으며, 그의 문화적 영향력은 거대했다. 헐크 호건이 무척 그리울 것”이라고 전했다.

호건은 현 아내 스카이 호건과 사별했으며, 전처 린다 호건과의 사이에 두 자녀(브룩 호건, 닉 호건)를 두고 있다. 린다와는 1983년부터 2009년까지 결혼 생활을 했고, 이후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제니퍼 맥대니얼과도 결혼했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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