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51] 튀르키예 파묵칼레에서 개 때문에 식겁하다

로마 제국 시절부터 온천 지대로 유명했다는 파묵칼레는 온천수에 섞인 석회 성분이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결과 현재와 같은 특이한 모습을 이루었다. 파묵칼레는 ‘목화의 성’이라는 의미로, 아닌 게 아니라 흰 목화솜을 펼쳐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양란 작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해외여행 하며 개 때문에 크게 놀란 적이 두 번 있다. 첫 번째는 이 칼럼 26번째 에피소드였던 태국 파타야에서 겪은 일이었다. 아침 일찍 혼자서 호텔 근처에 있는 ‘싼 프라품(미니 사당)’ 공장에 사진 찍으러 갔다가 덩치 큰 개들에 둘러싸여 큰 공포를 느꼈다.

태국 개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 태국 사람들로부터 보호받아서인지 평소에는 사람들을 거들떠보지 않기 일쑤이다. 더러 어슬렁거리며 사람 주위를 맴돌더라도 위협적인 분위기를 주는 일이 별로 없는데, 그날은 무슨 까닭인지 여러 마리가 나를 둘러싸고 으르렁대는 통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인간이지만, 맨 손일 때는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일을 겪고 난 뒤부터는 가급적 남의 나라 개와 엮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다시 한번 개 때문에 간이 떨어질 뻔한 일이 생겼다. 튀르키예 파묵칼레에 갔을 때 호텔에서 겪은 일이다.

흔히 앙숙 관계를 ‘개와 고양이 사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그런 습성 때문에 파묵칼레 호텔에서 몹시 놀랐다. 그 일이 있었던 호텔의 야경이다./신양란 작가

무슬림(이슬람교도)이 대부분인 튀르키예 사람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 이슬람교에서는 돼지를 불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 여행 팀 가이드였던 이는, 돼지고기를 튀르키예에서는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인근 나라인 그리스나 불가리아에 가서 사 온다고 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개고기도 먹지 않다. 돼지고기 같은 이유가 아니고 정서적으로 유럽에 가까운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개는 친구이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고 한다.

튀르키예를 여행하다 보면 도사견만큼 커다란 개가 유유자적하며 골목길을 배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목줄을 매지도 않은 채 여러 마리가 떼 지어 다니는데, 신기한 건 사납게 짖는 개가 없다는 점이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딱히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동네 개인데, 주민이 알아서 먹이를 챙겨주기 때문에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팔자 좋은 개인 셈이다. 사람들이 괴롭히지 않으니 사나워질 이유가 없어서인지 도사견 같은 생김새와는 달리 매우 순한 순둥이였다.

하지만 그런 튀르키예에서 태국과 같은 뜻밖의 사고가 발생했다.

튀르키예 여행 중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인 파묵칼레는 흰 눈이 쌓인 것 같은 온천 지대로 유명세를 얻었다. 아래 지역에서 바라보면 언덕이 온통 눈에 뒤덮인 것처럼 보인다./신양란 작가

파묵칼레 호텔에서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친 후, 전날 밤에 온천욕을 즐긴 노천온천 사진을 찍기 위해 걷고 있을 때였다. 새벽 6시 30분 즈음이었는데 해가 늦게 뜨는 겨울이라 주변이 어둑했고, 내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노천온천 건너편에서 개 서너 마리가 격렬하게 짖으며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오는 게 아닌가. 맘 같아서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가고 싶은데, 그러면 더 공격적이 된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어 두려움을 꾹 참고 슬금슬금 뒷걸음쳤다. 그렇게 순하던 녀석들이 왜 갑자기 나를 향해 공격해 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워낙 덩치가 큰 녀석들이라 정말 무서웠다.

개가 코앞까지 달려왔을 때, 나는 오금이 저리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낯선 타국 땅에서 개한테 짓찢기는 신세가 되는구나 싶어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나 녀석들은 순식간에 나를 밀치다시피 스쳐가며 더욱 사납게 짖어대는 게 아닌가. 녀석들의 공격 목표는 내가 아니라 내 뒤에 있는 고양이였다.

혼비백산한 고양이가 멀찌감치 달아나자 개들은 다시 순둥이가 되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내게 다가왔는데, 나는 이미 혼이 다 나간 상태라 녀석들을 귀여워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도 내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파묵칼레는 내게 석회봉의 신비스러운 장관이나 히에라폴리스의 스산한 풍경보다는 개 때문에 혼이 나간 경험이 강렬했던 도시로 남아버렸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튀르키예는 이슬람국가들 중에서는 비교적 종교적 제약이 느슨한 편이라 주변 나라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묵은 파묵칼레 호텔에는 튀르키예 여행자들이 많았는데, 스카프를 쓰지 않은 여인들이 여럿 보였다. /신양란 작가
파묵칼레 온천 지대 뒤쪽으로 히에라폴리스 유적이 있다.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2세기 말에 페르가몬 왕조에 의해 세워진 도시로, 유네스코는 파묵칼레는 자연유산으로, 히에라폴리스는 문화유산으로 각각 지정하였다. 두 지역이 인접해 있으므로 묶어서 유네스코 복합유산으로 분류한다. /신양란 작가
.히에라폴리스에는 로마 제국 시절의 건축 유적도 다수 남아 있다. 이것은 로마 제국 영토였던 곳에서 보이는 원형 극장들과 그 형태가 흡사한 극장 유적이다. /신양란 작가
지금은 물길이 말랐지만, 히에라폴리스 유적에는 물이 흘렀던 흔적이 여러 군데 남아 있다. 이 물길을 따라 흐른 물이 파묵칼레 온천에 닿았을 것이다/신양란 작가
히에라폴리스에는 죽은 자들의 영토인 네크로폴리스(공동묘지)가 있다. 히에라폴리스 주민이 죽은 뒤 묻히기도 했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천에 왔다가 끝내 사망한 사람들이 묻히기도 했다./신양란 작가
한때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히에라폴리스이지만, 이제는 옛 모습을 짐작하기 어려운 폐허로 변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들꽃이 주인인 양 피어있다./신양란 작가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가 연결되는 지점은 비교적 성벽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튀르키예는 여행자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신양란 작가

여행작가 신양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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