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배트맨’, 한국대선이 끝났다[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또 다시 ‘배트맨’ 이야기가 필요한가. 대답은 “그렇다”이다. 1989년 팀 버튼 감독 ‘배트맨’이 나온 이후, 8번째로 제작된 맷 리브스 감독의 ‘더 배트맨’은 고담시의 탐정 브루스 웨인의 이야기가 현 시대에도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는 코믹스 ‘배트맨:원 이어’ ‘배트맨:무인지대’ 등 여러 편의 원작 코믹스를 참고해 2022년에도 우리 사회와 공명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복수에 탐닉했던 한 젊은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깨달음을 얻는지를 따라가는 스토리라인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대선으로 후유증을 앓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2년간 고담시의 어둠 속에서 범법자들을 응징하며 배트맨으로 살아온 브루스 웨인(로버트 패틴슨). 알프레드(앤디 서키스)와 제임스 고든 경위(제프리 라이트)의 도움 아래, 도시의 부패한 공직자들과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활약한다. 고담의 시장 선거를 앞두고 고담의 엘리트 집단을 목표로 잔악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수수께끼 킬러 리들러(폴 다노)가 나타나자, 최고의 탐정 브루스 웨인이 수사에 나서고 남겨진 단서를 풀어가며 캣우먼(조 크라비츠), 펭귄(콜린 파렐), 카마인 팔코네(존 터투루), 리들러를 차례대로 만난다. 수사에 박차를 가하던 배트맨은 부모님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 밝혀지자 복수와 정의 사이에서 갈등한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탐정=맷 리브스 감독의 ‘더 배트맨’이 팀 버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시리즈와 다른 점은 브루스 웨인의 정체성을 탐정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어둠의 도시 고담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을 추적하면서 누아르의 분위기를 내고 탐정 특유의 추리극까지 결합돼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을 팽팽하게 끌고 나간다. 멀리는 부모님의 죽음을 둘러싼 고담시의 재건축 비리의 뿌리를 추적해 들어가고, 가깝게는 빌런 리들러가 남기는 단서의 퍼즐을 하나 둘씩 맞춰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층 빌딩에서의 공중낙하부터 육중한 배트모빌을 타고 펭귄과 벌이는 다이내믹한 추격신 등 액션 어드벤처의 볼거리도 갖췄다.

리들러=배트맨과 리들러는 고아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배트맨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선한 방법으로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리들러는 권력층에 대한 연쇄살인에 이어 모든 것을 파멸로 몰아넣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이 영화의 리들러 캐릭터는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를 떠올리게 만든다. 조커(호아킨 피닉스)가 사회적 냉대로 서서히 빌런으로 변해갔듯, 리들러 역시 사회적 소외를 겪다 점차 분노를 키워간다. 리들러가 남기는 숫자와 수수께끼는 배트맨에게 부패로 썩은 고담시의 진실이 무엇인지 찾아내라는 신호다. 진실을 마주한 배트맨은 이제 더 이상 탐정 2년차의 아마추어가 아니다. 그는 새로운 길을 떠난다.

홍수와 혼란=리들러는 고담시 제방을 터뜨려 홍수를 일으킨다. 도시가 물에 잠기는 상황은 2005년 8월 29일 카트리나 상륙으로 초토화된 뉴올리언스를 연상시킨다. 코믹스 ‘배트맨:무인지대’는 지진이 휩쓸고 간 고담시의 붕괴된 사회 질서를 그린 바 있다. 그러니까, ‘배트맨’ 원작자들은 사회질서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에 크나큰 균열이 생겼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탐구한다. 이 과정에서 빌런이 노리는 것은 ‘혼란’이다. 놀란 감독의 조커(히스 레저)도 카오스를 동력으로 삼아 움직였다. 배트맨의 궁극적인 적은 조커, 리들러, 펭귄 등 여러 명의 빌런이 아니라, 무정부 상태가 지배하는 극도의 혼란일 것이다.

복수=배트맨은 지하철 역에서 아시아인을 괴롭히는 범죄자들을 응징하며 “나는 복수다”라고 외친다. 극 후반부에 악당 중 한 명 역시 “넌 누구냐”는 배트맨의 질문에 “나는 복수다”라고 말한다. 배트맨은 복수가 복수를 낳는 연쇄고리로 사회 정의를 실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더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이 복수의 미망에서 벗어나 희망의 횃불을 드는 이야기다. 복수의 허망함에 관한 오래된 속담이 있다. “복수를 하려거든 두 개의 무덤을 파라. 하나는 적의 무덤, 다른 하나는 너의 무덤.”

한국 대선이 끝났다. 모두들 이 속담을 기억하길.

[사진 = 워너브러더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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