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의 시대가 온다 [이승록의 나침반]

마이데일리 창간 17주년 특집인터뷰…한국 음악의 미래, 서리(Seori)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노래 'Dive with you'에서 서리가 깊고 짙은 목소리로 "I'm ready for the dive tonight" 하고 첫 소절을 떼는 순간. 우린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하고 푸르른 서리의 바닷속에 뛰어들게 된다. 파도가 부서지며 울려퍼지는 맑고 투명한 노래. 서리의 시대가 시작되는 소리다.

"제가 가수로서 첫 대면 공연이 이번에 미국에서 열렸던 'HITC 페스티벌'이었어요. 관객이 한 분만 계셔도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었어요. 아무도 절 모르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관객 분들이 제 이름을 불러주시고, 제 노래를 따라 불러주시는 거예요. 믿기지 않았어요. 그전까진 많이 떨렸는데, 그때 정말 큰 감동을 받았어요."

믿기지 않는다. 서리의 잠재력과 찬람함은 해외에서 먼저 주목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VEVO는 '2022년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2022'S ARTISTS TO WATCH)' 총 21팀 중 한 명을 서리로 선택했다. 한국인 아티스트는 서리가 유일하다.

스스로 작사, 작곡하는 능력에 한번 들으면 잔상이 강하게 남는 중독성 깊은 음색까지, 서리의 노래는 분명히 무언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메시지를 직접 노래로 만들어 낼 줄 안다는, 음악적 자립(自立)은 서리를 단지 '노래 잘하고 예쁜' 가수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를 노래하는, 살아있는' 가수로 평가 내리게 한다.

"곡 쓰는 게 재미있어요"라고 했다. "스트레스 받을 때도 많지만, 제가 끝까지 오랫동안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건 이것 밖에 없거든요"라며 "곡 쓰고 노래 부르는 것만큼은 너무 재미있어요"라고 했다. 정작 "내성적인 성격이라"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 불러본 경험은 많지 않았다는 서리다.

"제 목소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었거든요. 친구들이 '네 노래는 네가 제일 잘 어울려'라고 해줘도 친한 친구들이 하는 말이니까 잘 와닿지 못했어요. 그래서 유튜브에 노래를 올릴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노래를 들려주자는 마음이요."

저 멀리서 파도가 밀려오듯, 고요하게 다가와 부드럽게 넘실대는 그루브함이 서리의 목소리의 특징이다. 한글과 영어 가사의 발음은, 그 경계가 무색해질 정도로 하나처럼 들릴 때가 있는데, 노래의 감성을 최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선택이다. "노래의 질감에 집중했다"는 서리는 "한글로 불렀을 때나 영어로 불렀을 때, 하나의 결로 들리게 하려 했다"고 말했다.

하나였다. 데뷔하면서부터 서리는 차근차근 하나의 세계를 그려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거꾸로 이름을 지은 앨범 '?depacse ohw'의 맥락도 "하나의 앨범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곡을 써 내려가며 스케치했다. 최신곡 'Dive with you'가 다른 곡들보다 청량한 색상을 품고 있음에도, 햇살처럼 마냥 밝지 않은, 오묘한 감성이 느껴지는 건 서리 특유의 음색이 아련한 그늘을 드리우는 까닭이다.

"영화는 '라라랜드'를 좋아하는데, LA 갔을 때 보니까 하늘이 정말 보랏빛이더라고요. 책은 추리소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어릴 때부터 안 가리고 다 읽었어요"라며 신나서 얘기하는 이 수줍은 성격의 소녀가 어떻게 그토록 대범하게 앨범을 만들어내는지,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듯한 눈빛으로 노래할 수 있는지, 새삼 서리가 만들어갈 이야기가 거대하게만 느껴졌다.

"저는 좀 우울한 얘기를 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근데 사실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우울해지길 바라는 마음은 아니거든요. 긍정적인 영향을 드리고 싶어요. 누군가 힘들 때 '힘내, 괜찮아'라는 말보다, 먼저 공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감만큼 큰 위로가 없다고 믿어요."

서리란 이름의 의미를 묻자 "창문에 낀 얼음조각을 상상하면서 말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라고 했다. "맑으면서 부서질 것 같은 느낌 같았어요"라고도 했다. 서리의 시대가 성큼 다가온다. 맑으면서 부서질 것 같은, 그러나 결코 부서지지 않고 맑게 빛날 서리의 시대가 온다.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ATISPAUS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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