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노 타임 투 다이’, 헤라클레스가 된 제임스 본드[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제임스 본드는 대중문화사에서 불멸의 아이콘이다. 한 명의 캐릭터가 60년 동안 대중의 사랑의 받은 적은 없었다. 1962년 ‘007 살인번호’로 시작한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숀 코넬리부터 다니엘 크레이그까지 6명의 배우가 연기하며 모두 25편의 영화로 탄생했다. 냉전시대에 탄생한 제임스 본드는 적이 명확했던 시대를 거쳐 이제는 누가 적인지 모르는 시대를 접어들면서 변화에 직면했다. “요즘은 영웅과 악당도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극중 어느 인물의 넋두리는 그만큼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으며 잊혀질 뻔했던 제임스 본드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2006년 ‘007 카지노 로얄’에 합류하며 극적으로 부활했다. 그는 ‘까칠한 제임스 본드’ 캐릭터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이제 ‘007 노 타임 투 다이’를 마지막으로 떠날 시간이다. 다니엘 크레이그를 떠나보낸 제임스 본드는 신화 속 영웅으로 거듭난다.

영국 정보기관 MI6를 은퇴하고 연인 매들린(레아 세두)과 함께 이탈리아 남부의 마테라로 여행을 떠난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는 옛 연인 베스퍼(에바 그린)의 묘지를 찾았다가 국제 범죄단체 스펙터 일당의 습격을 받는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스펙터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하던 그는 매들린을 의심하고, 결국 헤어진다. 5년의 시간이 흐른 뒤, 옛 동료인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펠릭스(제프리 라이트)가 찾아와 스펙터가 훔친 MI6의 비밀 생화학무기를 회수하고 러시아 출신 담당 연구원을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고심 끝에 복귀한 그는 새로운 여성 007 노미(라샤나 린치) 등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악당 사핀(라미 말렉)과 마주친다. 전 세계를 몰락시킬만한 가공할 프로젝트를 실행하려는 사핀에 맞서 제임스 본드는 마지막 결단을 내린다.

비밀 생화학무기 프로젝트의 이름은 ‘헤라클레스’다. 그렇다면 왜 제작진은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먼저, 신화를 읽어보자. 헤라클레스는 아내 데이아네이라를 겁탈하려던 반인반마 네소스를 독이 묻은 화살로 쏘아 죽였다. 네소스는 죽어가면서 데이아네이라에게 식어버린 사랑을 되살릴 수 있다는 거짓말로 자신의 피를 준다. 그러나 이 피에는 헤라클레스가 화살촉에 바른 히드라의 독이 퍼져 있었다. 네소스의 말을 그대로 믿은 데이아네이라는 피를 보관해 두었다. 훗날 헤라클레스는 오이칼리아에 원정을 떠나 아름다운 공주 이올레를 얻는다. 열등감에 빠져 남편의 사랑을 잃을까 두려웠던 데이아네이라는 ‘사랑의 묘약’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던 네소스의 피(히드라의 독)를 바른 옷을 남편에게 입힌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헤라클레스는 장작더미 위에 올라가 최후의 선택을 감행한다.

제작진은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여정을 헤라클레스의 삶과 겹쳐 풀어냈다. 헤라클레스가 12년 동안 불가능에 가까운 12가지 과업을 수행했듯, 제임스 본드 역시 냉전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극악한 악당에 맞서 인류를 구하는데 혼신을 다했다. 특히 다니엘 크레이그는 역대 제임스 본드 가운데 가장 긴 15년 동안 연기했고, 6명 가운데 가장 많은 인기와 지지를 얻었다. 시리즈에 헌신한 배우를 떠나보내는 영웅 서사로 헤라클레스 이야기보다 더 잘 어울리는 신화는 없을 것이다. ‘인간 영웅’이었던 헤라클레스는 하늘에 올라가 신의 반열에 올랐다. 이안 플레밍의 소설 속 인물이었던 제임스 본드는 영화계로 건너와 불세출의 아이콘이 됐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떠나도 제임스 본드는 부활할 것이다.

“굿바이, 다니엘 크레이그”

[사진 = UPI, 러시아 화가 이반 아키모프(1755~1814)의 1782년작 '장작더미 위에 있는 헤라클레스를 보는 필록테테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왕립미술학교 소장]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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