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팝록을 향한 존 메이어의 고백[김성대의 음악노트]

존 메이어가 데뷔한지도 올해로 20주년이다. 맙소사, 그러니까 그의 나이 올해로 43살(77년생이니까 한국식 나이로는 45살)이란 얘기다. 나는 아직도 그가 데뷔한 2001년을 생각했던 것일까. 적어도 2006년에 'Continuum'을 발매한 그를 나는 내 기억 속 가장 최근의 존 메이어로 여긴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존을 항상 젊다고 생각했다. 물론 100세 시대에 그는 여전히 젊지만, 40대에 접어든 이상 존도 이제 더는 부정할 수 없는 아날로그 세대 중년 음악인이다. 새 앨범 'Sob Rock'은 그런 존이 80년대라는 특정 시대를 겨냥해 그 시절 모던 팝을 자유롭게 탐사한 작품이다.

흐느끼는(Sob) 록이라니.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재킷 사진도 그렇고, 마치 앨범 분위기가 무겁고 고독한 것들로 꾸며지리란 예고 같다. 그리고 그 예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Sob Rock'은 고독하되 무겁지는 않고, 대신 세련된 톤 메이킹과 80년대 팝의 보드라운 공간감 앞에 무릎 꿇은 작품이다. 일단 첫 곡 'Last Train Home'에서 여명처럼 밀려드는 건반과 드럼 톤부터 그렇다. 이는 영락없는 토토(Toto)의 그것으로, 인트로 드럼 연주는 제프 포카로(셔플 비트에 유독 강했던 토토의 전 드러머. 1992년 사망했다)를 오마주 한 것이고 건반 색채는 토토의 히트곡 'Africa'의 환영이다. 존이 초대한 키보디스트 그레그 필린게인즈와 퍼커셔니스트 레니 카스트로가 똑같이 토토와 함께 연주했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 흥미롭다.

존은 이 앨범에서 최소를 선호했다. 기를 쓰고 오르기보단 천천히 내려가는 작법을 택한 것이다. 복고 지향에 가장 어울릴 이런 온화한 태도는 가감 없이 존 메이어 신작의 방법론이 됐다. 예컨대 가식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New Light'의 멜로딕 기타 솔로를 듣고 있으면 그가 80년대 소프트 록을 얼마만큼 사랑했고 또 확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존은 여기에서 기타를 든 크리슈나무르티 같다. 그는 음들을 채근하지 않고 마치 그것들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스스로 드러나게끔 연주한다.(그야말로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같은 연주다.) 꼭 이 곡만이 아니다. 존은 앨범 여기저기에서 어느 정도 무념에 빠져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이는 힘을 빼지 않고선 들려줄 수 없는 멜로디와 소리 질감의 가장 담백한 경지라 할 만하다. 산들바람 같은 'Shouldn't Matter But It Does'에서 피아노와 코러스의 조화를 들어보라. 때론 약하고 연한 것이 가장 강렬할 때가 있는 법이다.

90년대에 음반깨나 사본 사람이라면 '나이스 프라이스(Nice Price)'를 모를 수 없다. 한물 간 명반이지만 명반이기에 소장해야 하는 앨범들이 '나이스'한 가격으로 음악팬들을 유혹했던 때가 과거엔 있었다. 존 메이어는 바로 그 '나이스 프라이스' 스티커를 자신의 여덟 번째 스튜디오 앨범의 콘셉트로 삼았고, 그 시절 가격이 적혀있던 흰 스티커 위엔 애플사 로고와 발매 연도를 찍었다. '음반 사서 음악 듣던 당신들, 모두 안녕한가요?' 누군가에겐 한없이 반가웠을 두 스티커는 그가 중년 팬들에게 보내는 간접의 안부였던 것이다.

'Sob Rock'이 담은 음악의 모양새와 느낌은 일관되게 과거 지향적이다. 80년대 밴 헤일런과 폴리스, 에어 서플라이와 저니, 유투가 작품 곳곳을 떠돈다. 그 시대에만 들을 수 있었던 너그럽고 수더분한 멜로디, 연주, 코러스가 멈추지 않는 장맛비처럼 내리고 또 내린다. 제이제이 케일(J.J. Cale)에 푹 빠진 에릭 클랩튼의 과거를 엿보는 듯 한 'Wild Blue'는 그 수많은 빗방울 중 하나일 뿐이다.

"좋다. 유행에 편승한 작위적 레트로 감성보단 유행을 진단한 자연스러운 레트로 사운드에 더 가깝다. 기타리스트로서 이번에 그가 택한 롤모델은 비비 킹도 에릭 클랩튼도 아닌 마크 노플러. '피치포크'가 이 앨범을 돈 헨리, 스티브 윈우드의 80년대 작품들과 함께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Brothers In Arms'에 견준 것은 그래서다."

이 앨범을 처음 듣고 나는 내 SNS에 썼다. 피치포크의 의견대로 'Sob Rock'은 80년대 중후반의 돈 헨리, 스티브 윈우드, 그리고 다이어 스트레이츠를 조용히 머금고 있다. 어쩌면 푸근하게 어루만져주는 기타 연주의 대명사 같은 마크 노플러(다이어 스트레이츠의 기타리스트)가 이 리뷰의 끝에서 언급되는 건 이 음반에서 존 메이어의 기타 연주에 비추어볼 때 어떤 필연일지 모른다. 'Sob Rock'은 흐느낌을 넘어 궁극적으론(마크 노플러의 기타 연주가 그런 것처럼) 위로의 음악, 본질상 치유의 음악이기도 한 것이다.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는 완전히 새로운 것보단 기존 스타일(장르)을 큐레이팅 하는 능력이 앞으로 뮤지션들의 음악적 역량이 될 것이라 말했다. 결국 현란한 장르적 접목은 없었지만 조용한 시대적 인용은 유효했던 존 메이어의 신보는 사이먼의 충고(?)를 반은 받아들인 셈이다.

[사진제공=소니뮤직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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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뮤직매터스 필진

대중음악지 <파라노이드> 필진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국내)’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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