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다방’ 문태건 사장 “커피향 스며든 종로통 격세지감, 10대 인생 첫 깨달음”(인터뷰)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저희 경성다방이 탑골공원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할아버지 손님들도 많이 찾으시고, 하루 종일 가게 앞을 지나다니는 어르신들을 보게 돼요.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계신 분들을 바라보며서 내가 저 분들의 나이가 되면 어떤 모습일까 떠올려 볼때가 많아요.”

서울 종로구 낙원동 211번지에 자리잡은 경성다방은 10대 창업주 문태건 사장이 일구어 가는 삶의 터전이다. 2019년 고등학교 2학년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학업과 학교생활에 대한 고민을 오랜 기간 동안 거듭한 끝에 학교문을 마지막으로 나설 때, 새로이 펼쳐가야 할 생업의 인생을 어떻게 열어갈지 걱정이 앞섰다.

사실 18세 청소년이 시작할 일은 마땅한 게 없었다. 편의점이나 고깃집 알바가 문턱이 낮았지만 아메리카노 커피를 내리는 것도 기술이겠거니 라는 생각에 커피숍에서 일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속앓이를 하면서 걱정을 했지만 아들이 가는 길을 막을 생각은 없었다. 부모님의 배려 덕분에 커피숍에서 무급 알바를 하면서 커피나 음료 만들기부터 서비스에 필요한 세밀한 부분까지 섭렵할 수 있었다.

# 삼일운동 떠올리는 포토존, 이색체험 손님 호응

커피숍 일이 손에 익을 무렵, 아버지와 함께 종로 나들이를 했다. 아버지 문재원 씨가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서 인테리어, 부동산 관련 일을 해오고 있었기에 아들에게 커피숍을 직접 운영해 보는 건 어떤지 물어보았다.

혼자서 운영을 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오랜 지인이 커피숍 운영 경험이 많아 도움을 받기로 했다. 영화 ‘암살’ 등 식민지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보면서 서울의 옛 이름 경성이 추억을 떠올리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경성다방’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커피숍 한켠에 마련된 포토존도 문 사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탑골공원이 독립운동의 본산이라는 사실에 접근해 태극기와 독립선언문, 독립투사들에게 쏘아댔던 소총에 이르기까지 포토존에 구비했다.

“젊은 손님들을 겨냥하자면 광화문 쪽이 더 나을 수도 있는데 삼일운동을 떠올릴 수 있는 탑골공원이 있는 낙원동에 더 마음이 갔어요. 인근에 요즘 ‘핫’ 한 익선동이 있어서 오가는 길에 경성이라는 이름을 반갑게 여기고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뿌듯하고 기분 좋아요.”

지난해 11월 23일 가게 문을 열기까지는 아버지와 지인 분이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가게 인테리어부터 메뉴 구성에 이르기까지 두 분의 도움을 받으며 스스로 몇 달 동안 배웠던 커피숍 업무 경험은 시작해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경성사람커피·고종커피·쌍화라떼, 남녀노소 입맛 유혹

웬만한 커피숍에는 다들 자신만만하게 내놓는 추천 메뉴가 있다. ‘경성다방’은 뭔가 오래 묵혀진 듯한, 세월이 켜켜이 쌓인 듯한 다락 책방에서 느껴지는 정취를 담고 있다. ‘경성사람 커피’, ‘고종커피’, ‘쌍화라떼’가 자신 있게 내놓는 경성다방 만의 메뉴다.

‘경성사람 커피’는 커피 알갱이만 있는 맥심커피에 헤이즐넛 시럽과 설탕을 배합한 달달한 맛과 커피 향이 풍부해 독특함을 자아낸다. ‘고종커피’는 에스프레소 4샷을 기본으로 하는데 진한 커피의 애호가였던 고종 황제의 커피 스타일을 접목했다.

종로통 어른들을 위한 메뉴로는 앞서 설명한 ‘경성사람 커피’와 함께 ‘쌍화라떼’를 추천할 수 있다. 쌍화탕과 생크림을 섞어 쌍화크림을 만들어 내놓는데 뒷맛에 감도는 쌍화탕의 향미와 커피의 맛이 부드러운 생크림에 쌓여 엄지척 유발 메뉴로 인기가 있다.

손님들은 문 사장이 내놓는 색다른 커피 메뉴의 맛에 한 번 놀라고, 고3의 나이에 커피숍을 창업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란다. 주위에 친구들도 주말에 찾아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문태건 사장은 “ ‘경성다방’이 언제까지 간판을 내걸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가게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며 “또래의 친구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길고도 짧은 인생의 배움을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현재에 충실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사진제공=경성다방]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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