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지 '내일의 기억', 무너진 신뢰가 주는 공포심 [양유진의 클로즈업]

[마이데일리 = 양유진 기자]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고 공포와 불신으로 채워진다면? 이러한 가정에서 출발한 영화 '내일의 기억'은 인간의 심리를 세밀하게 파헤쳐 여운을 남긴다.

올해 첫 미스터리 스릴러 '내일의 기억'은 '덕혜옹주',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극적인 하룻밤', '외출', '행복'의 각색과 각본으로 촘촘한 스토리텔링을 선보인 서유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는 추락 사고를 당한 수진(서예지)이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남편 지훈(김강우)이 기억을 잃은 수진을 살뜰히 보살핀 덕분에 두 사람은 차츰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수진에게 이웃들의 위험한 미래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속에서 혼란에 사로잡힌다. 어린 여자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사건,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는 여학생의 모습이 보이는 식이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옛 직장 동료는 수진을 더욱더 어지럽게 만든다. 수진과 지훈 사이의 일을 유일하게 기억하는 인물인 그는 수진에게 지훈과 얽힌 믿기 힘든 소리를 하고 동료가 보낸 소포 속 사진에는 수진과 다른 남자의 얼굴이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훈이 누군가를 살해하는 흐릿한 기억이 떠오른 수진은 모든 것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려고 하지만, 기억의 조각이 맞춰질수록 지훈을 향한 불신은 커져만 간다.

미스터리 스릴러는 처음이라는 서유민 감독이지만 장르의 특성을 솜씨 좋게 버무려냈다. 촘촘하게 엮인 결정적인 복선이 단서를 끊임없이 던지면서도 설득력을 잃지 않는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추리 욕구를 자극하며 끝까지 집중력을 끌고 가게 하는 힘으로 이어진다. 모두 정교한 연출과 섬세한 스토리 전개 덕분이다. 거듭되는 반전 끝에는 짜릿한 카타르시스만 남는다.

두 주연 배우의 활약 역시 인상적이다. 로맨틱 코미디, 누아르, SF 등 다양한 장르로 변신한 거듭한 김강우는 또 한 번 스펙트럼을 넓혔다. 겉보기엔 다정한 남편이자 미스터리한 남자 지훈을 전혀 다른 색깔로 연기하며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구해줘', '암전'에 이어 스릴러에 도전한 서예지는 수진의 복잡한 감정선을 세밀하게 표현했다. 최근 연예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각종 논란으로 영화 행사에 불참하며 민폐 캐릭터로 전락했지만 연기력만큼은 흠잡을 데 없었다. 미래에서 본 살인자가 남편이라고 확신한 뒤 느끼는 두려움, 진실과 마주하고 느낀 충격을 그려내는 방식은 가히 '스릴러 퀸'이라 할 정도로 능수능란했다.

'내일의 기억'은 오는 21일 개봉한다. 러닝타임 99분.

[사진 = (주)아이필름 코퍼레이션/CJ CGV(주) 제공]

양유진 기자 youjinya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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