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 김순옥 작가, 또 부끄러움에 눈물 흘릴 텐가 [이승록의 나침반]

'펜트하우스'로 김순옥 세계는 변화…단, 지나친 선정성은 여전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김순옥 작가는 진화했다.

SBS '펜트하우스'는 '왜 또 김순옥 작가인가?'란 대중의 질문에 '이래서 김순옥 작가다'고 첫 방송과 동시에 답했다.

김순옥 작가는 이번에도 가장 잘하는 걸 하고 있다. 고상하게 보이지만 내면은 추악한 상류세계의 '있는 자들'과 신분상승을 위해 핍박에도 발버둥치는 '없는 자들'이 어떻게 치고받는지 집중한다.

어쭙잖게, 상류세계에도 선하고 어진 주인공, 가난해도 만족하고 행복한 주인공은 김순옥 작가의 세계엔 존재할 수 없다. '펜트하우스'에 선량한 상류층 심수련(이지아)이 있지만, 김순옥 작가는 그녀에게 친자식에 대한 비밀과 사악한 남편이라는 설정을 부여했다. 심수련이 지금과 전혀 다른 캐릭터로 변모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셈이다.

김순옥 작가가 '펜트하우스'로 진화한 지점은 '있는 자' 천서진(김소연)과 '없는 자' 오윤희(유진)다. 과거부터 김순옥 작가는 작품들의 근간인 '권선징악'의 실현을 위해 극악무도한 악역, 순진무구한 선역을 사용해왔다. 천서진이 악역(惡役), 오윤희가 선역(善役)이다.

그런데 '펜트하우스' 천서진과 오윤희는 다르다. 학창시절 예술제 트로피를 두고 벌어진 두 사람의 폭행사건 탓이다. 천서진의 트로피를 빼앗기 위해 고성을 지르고 폭력을 행사한 오윤희가 그 순간 악역처럼 보인 반면, 두려움에 떨다가 오윤희의 멸시가 기폭제가 돼 방어기제로 폭력성이 드러난 천서진은 가엽게 보이기까지 했다.

김순옥 작가가 악역 천서진에게는 오윤희에 대한 열등감과 트라우마, 선역 오윤희에게는 천서진의 것을 빼앗고 싶은 욕망을 심어둔 것이다. 이 까닭에 '펜트하우스'가 전개되는 동안 시청자들은 천서진를 마냥 악하게, 오윤희를 그저 선하게만 볼 수 없게 됐다.

김순옥 작가가 과거의 비판들을 어느 정도 수용한 것이다.

김순옥 작가의 세계에서 악인은 기필코 마지막 순간 벌을 받게 되는데, 악인의 말로에 시청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게 김순옥 세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로의 카타르시스를 키우기 위해선, 악인에 대한 시청자들의 분노가 먼저 커져야만 했고, 이를 위해 김순옥 작가는 악인으로 하여금 잔인한 악행만 반복하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극의 비중은 악역에게 지나치게 쏠렸으며, 복수는커녕 허구한 날 착하기만 한 주인공은 답답하다는 지적이 잦았다. 대표적으로 '왔다! 장보리'의 악역 연민정(이유리), '내 딸 금사월'의 선역 금사월(백진희)이 그랬다.

그러나 김순옥 작가는 이번 '펜트하우스'에선 자신이 고집하던 캐릭터 설정을 비틀었다. 이제 시청자들은 천서진과 오윤희에게 단순한 분노와 동정이 아닌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단, 진화에도 불구하고 김순옥 작가는 '막장 드라마' 비판의 결정적 원인을 해결하진 못했다.

막장 드라마들도 다 나름의 종류가 다른데, 김순옥 작가의 단점은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과도하게 폭력적인 장면을 즐긴다는 점이다.

김순옥 작가가 늘어지지 않는 전개로 빠른 호흡을 자랑하며, 통렬한 쾌감을 주는 실력은 인정하지만, 김순옥 작가의 작품을 보다 보면 '굳이 저렇게까지 보여줄 필요 있나' 싶은 장면이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악행이 적나라해야 시청자들의 분노가 커져서 결말의 쾌감이 높아지는 이유 때문이겠으나, 이런 방식이 결과적으로 김순옥 작가에 대한 평가를 떨어뜨린다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펜트하우스'도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선정성과 폭력성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 않은가.

김순옥 작가는 '내 딸 금사월' 종영 당시 제작 카페에 올린 탈고 소감에서 "눈물과 아픔, 부끄러움이 많았던 작품"이라며 "오늘로, 글 감옥에서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아쉬움과 후회와 부끄러움으로 자꾸 눈물이 난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이전 작품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변화하고, 성장했어야 했는데. 지금의 이런저런 논란은 모두 제 탓"이라고도 했다.

그 자책이 4년 전이다. 이젠 '펜트하우스'의 글 감옥에 갇힌 김순옥 작가가 부디 이번 작품을 마쳤을 때에는 부끄러움에 눈물 흘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사진 = SBS '펜트하우스' 제공, 마이데일리 사진DB, MBC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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