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의 양지' 버티지 않아도 괜찮아 [이예은의 안테나]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흑백의 세상이다. 버티는 것이 곧 승리처럼 여겨지고 버티지 못한 자들은 패배자로 전락한다. 모두가 입을 모아 경쟁을 부추겨 파국을 자처한 사회를 지적하지만 이는 사회의 통념으로 그치고 결국 변화와 수용은 언제나 개인의 몫이다. 다루기 가장 쉬운 대상은 아직은, 희망과 이상에 젖어있는 청년이다. 철듦이란 번지르르한 핑계는 길듦의 단계일 뿐이었고 파국의 선두에 있는 어른들과 함께 아슬아슬한 난간 위에 올라선다. 지친 기색이라도 비치면 나약한 인간으로 내몰리니, 꾹 참을 뿐이다. 영화 '젊은이의 양지'(감독 신수원)는 이 청년들에게 '버티지 않아도 괜찮아. 버티게 해서 미안해'라며 손길을 내민다.

사진을 좋아하는 준(윤찬영)은 어려운 집안 사정 탓에 휴면네트워크 콜센터에서 현장 실습생으로 사회에 뛰어들었다. 선한 인상에 미소가 순수했던 준은 매일같이 쏟아지는 폭언, 동시에 연체금을 독촉하기 위해 자신도 폭언을 내뱉어야 하는 환경 속에서 고단함을 느낀다. 인간성이 상실된 그 곳의 책임자인 센터장 세연(김호정)은 "인생 실습을 한다고 생각해"라며 진심 어린 다독임을 건네는 듯 하지만 정작 본인의 위태로운 자리에 허덕이며 비관에 빠진다.

사건은 고단함과 좌절이 맞물렸을 때 발생한다. 연체금을 직접 받기 위해 한 여성의 집을 찾았던 준은 죽음을 목격하고 공포에 휩싸이지만 돌아온 건 "알량한 자존심을 팔아서 받는 게 월급"이라는 세연의 비수 꽂힌 말들이었다. 결국 준은 변사체로 돌아오고, 세연은 의문의 메시지를 연달아 받으며 비극이 심화된다. 그 사이, 세연의 딸인 미래(정하담)는 번번이 막히는 취업 문턱에 총기를 잃고 자기혐오의 구렁텅이로 내몰린다.

영화는 벼랑 끝에 서있는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내며 실적 중심의 사회에서 초래되는 인간성의 부재를 꼬집는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다가오는 20살이 두려워진 준, 직업 사회의 일원을 꿈꾸며 끊임없이 자신을 무너뜨리는 미래, 남초 사회에서 버티기 위해 상사들의 추악한 본색도 감내해야 하는 세연까지. 인간 기본 윤리, 도덕 부재의 사회를 사실감 있게 그려냈다.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묘사가 아니라 이들의 아픔이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신수원 감독의 강점이 빛을 발한 대목이다.

'왜' 이런 참사가 일어났는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는 사람들. 대신 남들은 당연하게 버텨내는 사회인데, 너는 '왜' 버텨내지 못했냐는 질책 섞인 원망. 준을 향한 어른들의 가시 돋친 말들은 현 사회의 거울이다. 부조리한 현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바꾸기엔 버거우니 결국 가장 간편한 방식을 선택, 개인에게 화살을 돌리는 어른들의 비겁한 처세술이 고스란히 담겨 쓰라리다.

개개인의 개성을 요구하는 이 사회이지만 정신력만큼은 상향평준화를 기준으로 잡고 동일한 마음의 크기를 요구한다. 조언이랍시고 건넸던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 타인을 본보기로 삼으랍시고 말했던 "네 멘탈이 약해서 그래", "네가 더 노력하면 돼", 채찍질을 한답시고 일갈했던 "버티지 못하는 네가 유난스럽다" 등의 말들이 세상을 음지로 이끌었다.

시종일관 암울한 음지를 담아낸 '젊은이의 양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양지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내려놓음에 대한 어른들의 온기 어린 시선을 당부하고, 연륜의 올바른 기능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약해진 영혼을 붙잡고 애쓰고 있는 청년들에겐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 버티지 못해도 괜찮다며, 쉬어가도 괜찮다고 다독인다. 희망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사진 = 리틀빅픽처스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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