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명량대첩·수호신, 강을준 어록 의도와 효과[MD포커스]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대스엉아, 갑옷을 벗고 훨훨 날아라.", "(갑옷의)비늘이 덜 벗겨진 것 같다.", "오늘 우리의 작전명은 명량대첩이다.", "스엉현아, 언제까지 두목 호랑이 할 꺼야? 너는 고양의 수호신이야."

오리온 강을준 감독의 '어록'이 예상대로 빵빵 터진다. 이대성과는 '갑옷'과 '비늘'로 밀당을 한다. 이승현에겐 '수호신'이라며 치켜세웠다. 제프 위디, 최진수, 김강선이 결장한 15일 KGC전을 앞두고선 1597년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까지 거론했다.

그렇다면 강 감독의 어록은 어떤 의도가 있고, 오리온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실제 어떤 효과가 있을까. 강 감독의 이런 발언들은 절대 즉흥적이지 않다. 철저한 준비가 된 코멘트이다. 의도가 있다. 즉, 어록 속에 뼈가 있다.

갑옷과 비늘의 경우, 이대성이 실제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강 감독은 지난 시즌 이대성의 KCC 이적 후 부진에 대한 마음의 상처를 갑옷으로 표현했다. 갑옷을 벗고 자신이 하고 싶은 농구를 해달라고 했다. 실제 이대성은 올 시즌 초반부터 메인 볼 핸들러로서 맹활약한다. 현대모비스 시절 한창 좋았던 그 모습이다.

단, 갑옷을 벗으라는 말에는 이대성에게 단점까지 완벽히 벗겨 내달라는 주문도 포함돼있다. 여전히 이대성은 종종 경기흐름에 역행하는 무리한 플레이로 실책을 범한다. 악성 실책은 경기흐름을 넘어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강 감독이 "수학적으로 풀어라"고 하는 이유다. 자신의 농구를 하되, 동료 4명을 충분히 활용해 확률 높은 공격을 해달라는 주문. 이대성 역시 "리듬을 찾아야 한다"라고 했다.

강 감독은 이대성이 무리한 플레이를 하면 1~2분씩 빼고 한호빈, 박재현, 최승욱을 적극 활용한다. 강 감독은 "그럴 때 잠깐이라도 쉬면서 체력안배를 하는 게 좋다"라고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백업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의도가 깔려있다.

'명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서 배 12~13척으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물리친 전투였다. 백업이 약한 오리온에 3~4번을 오가는 최진수와 수비력이 좋은 베테랑 김강선의 존재감은 상당히 크다. 위디까지 데뷔하지 못했던 상황. 멤버구성과 전력이 좋은 KGC(15일)를 상대로 집중력을 고취하고 격려하는 의미의 어록이었다. 오리온은 경기력이 좋지 않았으나 어쨌든 시즌 첫 승을 따냈다.

수호신의 경우, 홈 개막전 패배 직후 강 감독이 기자에게 오프 더 레코드를 요청했던 어록이다. 이승현은 고려대 시절 '두목 호랑이' 이후 임팩트 있는 별명이 없었다. 그러나 이승현은 국가대표 4번이자 오리온 골밑 수비의 핵심이다. 19일 경기서 LG 캐디 라렌이 위디는 쉽게 공략했으나 이승현 특유의 낮은 자세에 의한 강력한 수비에 밀려 수 차례 제대로 슛을 던지지 못했다. 실제 LG전 후반에 오리온이 흐름을 잡은 원동력이었다.

강 감독은 그런 이승현에게 멋진 별명을 붙여 사기를 고취하고 싶었다. 일부러 홈 첫 승 전까지 아꼈다. LG전 작전시간에 "스엉현아, 너는 고양의 수호신이야"라고 했다. (경기 후 그 장면이 중계방송을 타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강 감독의 어록에 팀 분위기와 케미스트리가 좋아지는 효과가 있는 건 분명하다. 이대성은 "감독님 말씀이 너무 웃긴다. 웃음을 참느라 힘들다. 예전부터 이런 분위기가 참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등에 비늘이 있나 진짜 뒤를 돌아보기도 한다"라고 했다. 한호빈도 "감독님이 그런 말씀(명량대첩)을 해주면 진짜 힘이 된다"라고 했다.

또 하나. 강 감독은 미디어와 농구 팬들을 소중히 여기는 지도자다. 자신의 어록으로 오리온과 프로농구가 좀 더 관심을 받는다면 얼마든지 어록을 더 연구하고 공개하겠다는 생각이다. 상당히 긍정적이다. 프로농구 주관방송사가 지난 시즌처럼 감독들에게 마이크를 채우면 강 감독이 1순위다.

[오리온 강을준 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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