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냄새와 선량한 차별주의자[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기생충’의 오프닝신은 기택(송강호)네 가족의 반지하 창문 앞 빨랫줄에 널려 있는 양말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양말은 우리가 입는 의류 중에 냄새가 가장 심하다. 봉준호 감독은 첫 장면부터 이 영화가 냄새를 다루게 될 것이라고 보여준다. 양말, 소변, 반지하를 집어삼킨 흙탕물, 가정부 문광(이정은)의 토사물, 역류하는 분뇨 등 코를 찌르는 냄새는 스크린을 뚫고 나올 듯 생생하다. ‘기생충’은 기택의 몸에 배어 있는 ‘반지하 냄새’가 어떻게 사람을 차별하고, 어떻게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파국에 이르게 되는지를 블랙 코미디 속에 스릴과 서스펜스를 담아 시종 흥미롭게 펼쳐낸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의 냄새를 통해 혐오와 차별의 연쇄고리를 파고든다. 일찍이 발터 벤야민은 “모든 혐오감은 원래 접촉하는 것에 대한 혐오감”이라고 했다. 사업이 망해 중상층에서 하류층으로 떨어진 기택네 가족은 최상류층 박동익(이선균) 가족을 만날 일이 없었다. 접촉할 일이 없으니 두 가족이 혐오감을 느낄 일도 없었다. 그러나 기우(최우식)가 과외교사로 들어간 뒤 여동생 기정(박소담)을 미술치료사로, 아빠 기택을 운전기사로, 엄마 충숙(장혜진)을 가정부로 취업시키면서 비극이 싹튼다. 최상류층의 내밀한 사생활과 그들의 속마음을 꼼짝없이 들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서 기택의 모멸감은 차곡차곡 쌓여간다.

‘동물농장’ ‘1984’로 유명한 조지 오웰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하류층 사람들은 냄새가 고약하다”고 썼다. 그의 모든 글은 냄새로 진동한다. ‘1984’에선 윈스턴 스미스가 4월의 추위를 피해 빅토리 맨션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에서 “삶은 양배추와 오래된 누더기 발판 냄새가 나는 복도”라고 서술한다. 조지 오웰은 악취 풍기는 냄새로 당시 사회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서구에서 우리는 후각에 의해 동료 인간으로부터 분리된다”면서 “중노동이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기생충’의 기택 역시 옷을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반지하 냄새’로 박동익 사장과 분리된다.

봉준호 감독은 조지 오웰처럼 후각적 공격을 감행한다. 박동익은 기택의 몸에서 무말랭이 냄새, 행주 삶은 냄새, 지하철 타는 사람들 특유의 냄새를 맡았다. 사실 그의 말은 사적인 공간에서 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기택이 엿듣게 되면서 비극이 잉태된다. 후각은 동물적인 감각이다. 동시에 ‘자기 보존의 감각’이다. 후각은 공기에 숨어 있는 위험을 감지한다. 박동익은 기택의 몸에서 나는 냄새로 ‘선을 넘는 위험’을 간파했다. 후각은 감정적이고 비밀스러운 감각이다. 청각과 시각보다 훨씬 더 깊숙하게 마음을 뒤흔든다. 냄새로 차별받는 기택의 자존감은 송두리째 뿌리 뽑혔다.

엄밀히 말하면, 박동익은 잘못이 없다. 냄새로 타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을 기택에게 들켰을 뿐이다. 심리학자 폴 로진은 “혐오는 어떤 대상이 자기 몸 안으로 들어와 자신을 더럽힌다는 느낌과 이어져 있다”고 했다. 박동익은 기택의 냄새가 자신의 몸을 더럽힌다는 느낌을 받고, 마음속으로 혐오하고 차별했다. 김지혜 교수가 간파했듯,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신화일 뿐이다. 우리 모두는 차별을 받기도 하지만, 차별을 할 수도 있다. 박동익은 기택을 사회적으로 차별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차별했다. 그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였다.

양말로 시작한 영화는 양말로 끝난다. 첫 장면의 양말은 따뜻한 햇살을 받았다. 언젠가 마를 것이라는 희망도 있었다. 곧이어 와이파이가 연결되고, 기우의 친구 민혁(박서준)이 재물운과 합격운을 가져다준다는 수석을 갖고 과외 일자리도 마련해줬다. 좋은 일만 일어날 듯 했다. 하룻밤 사이에 비극이 일어난 뒤에 상황은 더 악화됐다.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기우의 반지하 집은 통신도 끊겼다. 기우의 등 뒤로 여전히 양말이 걸려 있다. 영화가 시작할 때는 여름이었지만, 끝날 때는 겨울이었다. 그것도 늦은 밤이다.

겨울에 빨아놓은 양말은 더 늦게 마를 것이다.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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