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정 "지쳐있을 때 만난 '프랑스여자'…큰 위로 받았어요" [MD인터뷰](종합)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 이 기사에는 영화 내용과 관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30년이라는 긴 연기 생활에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배우 김호정(53)은 영화 '프랑스여자'로 위로를 받았다.

김호정은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프랑스여자'(감독 김희정) 개봉 기념 라운드 인터뷰를 열어 취재진과 만났다. '프랑스여자'는 20년 전 배우의 꿈을 안고 프랑스 파리로 떠난 미라가 서울로 돌아와 옛 친구들과 재회한 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특별한 여행을 하는 이야기.

40대 중년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는 프랑스 국적을 가진 한국 여자의 이방인 위치, 일상인과 예술인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의 쓸쓸함과 불안 등을 다층적으로 표현해냈다. 그 덕에 일찍이 작품성을 인정받아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 연이어 초청되기도 했다.

극중 김호정은 20년 전 배우를 꿈꾸며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가 프랑스인 남편과 결혼해 통역가로 파리에 정착한 미라 역을 맡았다. 최근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아스달 연대기', '초콜릿', '하이에나' 등으로 최근 보다 더 브라운관 시청자들과 가깝게 만난 김호정은 이번 영화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 프랑스 국적의 한국여자로 분한 그는 서울과 파리,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인물의 혼란스러운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날 김호정은 "이 영화는 많이 다른 거 같다. 관객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살짝 생소하다. 두 번째 보니까 이야기가 들어오고, 세 번째에는 디테일이 느껴지고 네 번째에는 즐겼다. 모든 게 치밀하게 계산된 영화였더라. 제 주변에도 두 번정도 본 분들이 계신데 훨씬 더 좋은 거 같다. 처음엔 긴장을 한다. 실마리를 찾고, 현재와 과거를 오가니 거기서 오는 긴장이 있다"며 "사실 저도 시나리오 처음 읽을 때 '뭐지?' 하면서 가다가 뒤에 모든 게 다 풀렸다. 앞의 이야기가 다 맞춰지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영화는 현실과 환상을 교차로 구성해 미라의 불안정한 심리를 보다 더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이와 관련해 김호정은 "시나리오는 굉장히 쉽고 치밀하게 흘러갔다. 다만 특정한 직업 등이 생소함을 자아내는 것 같다. 화면으로 봤을 땐 당황할 수 있지만 그냥 흘려보내고 생각을 어렵게 하지 않으면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며 "극중 미라는 의식으로 들어가 상상을 한다. 어린 성우(김영민), 영은(김지영) 등을 만나면서 당시의 자신이 보고 싶은 거다. 일부러 상상이라고 의식하고 연기하면 연기가 되지 않는다. 그냥 그 상황에 충실할 뿐이다"라고 힘주어 전했다.

미라는 친절하지만 예민하고, 끝없이 혼란을 겪는 인물. 김호정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그는 "영화를 꿈꾸고 있는 친구들은 오히려 저보다 영화에 대해 더 많이 안다. 외국에서 며칠 관광하는 것과 마을에서 사는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굉장히 조심스럽고 긴장된다. 미라도 그랬을 거 같다. 그래서 조심스럽고 예민하다"며 "계속해서 동료들에게 과거 이야기를 물어보는 것 역시 떠보는 게 아니라 정말 그냥 기억이 안 나는 거다. 저는 '진짜 우리가 그랬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어렸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현재로 와서 돌이켜보니 그게 소중한 시간이었던 거다"라고 말했다.

또 "과거 해라(류아벨), 성우와의 관계에 속해있던 것 역시 후회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해라는 성우의 존재보다 자신의 미래가 더 중요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20년이란 시간이 흐르자 후회로 다가온 거다. 프랑스 남편한테도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그 때서야 인식했다고 생각했다. 미라는 열심히 살아왔지만 뜻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바라봐줬던 남자가 아직까지 내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를 확인하고 싶어한 게 아닐까"라고 자신의 해석을 전했다.

실제 유려한 불어 소화, 프랑스 여성을 보는 듯한 분위기로 시선을 사로잡았던 김호정은 정작 "저는 사실 불어를 싫어한다. 너무 어렵다. 저는 목소리가 딱 떨어지는 스타일이라 독어가 더 잘 어울린다. 또 독어는 읽을 수 있지만 불어는 못 읽는다. 그래서 이걸 하겠다고 하자마자 바로 불어를 배웠다. 프랑스 남자 배우도 일찍 들어와서 합을 엄청 맞췄다. 프랑스 사람들은 싸울 때는 말도 되게 빠르게 하는데 그것도 연구했다. 또 프랑스 갔을 때 미라의 모델이 된 분이 있다. 그 부분이 예민하고 섬세한 걸 보고 내가 잘 만들었다고 안심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희정 감독에 대해서는 "겉으로는 화통하지만 미라와 닮았다. 굉장히 섬세하다. 사실 맨 처음 영화를 볼 때 눈물이 났다. 감독이 저를 직접 찾아왔었다. 그 때부터 저희 집이 작업실이 됐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가벼운 소통만 했지, 이미 다 이야기가 완성됐을 때였다. 다 준비를 해놓고 빠르게 찍었다. 그래서 여자 감독님과 작업할 때는 이런 게 참 편안하다. 잠옷 같은 것도 실제 제 슬립을 사용했다. 이런 디테일들을 무수히 이야기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영화 내에서 가장 밀접하게 호흡을 맞춘 김영민과의 남다른 인연도 밝혔다. 하지만 '부부의 세계'는 정작 보지 못했다며 "대신 '사랑의 불시착'을 봤는데, 정말 잘했다. 감성을 흔드는 캐릭터이지 않나. 그건 김영민이 굉장히 잘하는 부분이다. 무대에서도 그런 섬세한 걸 잘했었다. 제가 '너 너무 떴다'라고 했더니 정작 집에만 있어서 실감이 안 난다고 하더라. 항상 귀엽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편하다. 현장에서도 나름 키스신이 있고 그랬지만, 자연스럽게 합을 맞췄고 굉장히 편안하게 했다. 김영민 씨는 또 힘들었다고 할지도 모른다"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1991년 연극 무대에서 데뷔한 김호정은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임권택 감독의 '화장', 문승욱 감독의 '나비' 등 여러 감독들과 함께 작업하며 자신이 가진 내공을 톡톡히 발휘해왔던 바다. 이처럼 내로라하는 감독들의 선택을 받아온 김호정이지만 여전히 갈증은 컸고, 언제나 치열했다.

연극배우의 꿈을 이루지 못한 미라 캐릭터를 보며 크게 공감했다고 털어놓은 김호정은 "20대에는 미쳐서 연극만 하고 살다가 '나비'라는 영화로 상을 받고 내려와서 울었다. 너무 허무했다. 나와 헤어졌던 남자친구가 떠오르더라. 꽤 시간이 흘렀던 때였는데 그 때서야 그러더라. 그 때부터 심하게 우울증이 걸렸다.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내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들에게 잘하고 살았어야 했는데 이게 뭐라고 이러나 싶었다. 그냥 독립영화에서 상을 하나 받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란 생각에 시달렸다. 엄청 우울했다. 지금은 가족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다. 코로나19도 너무 위험하니까, 주변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커졌다"고 털어놨다.

또 "이제는 물리적으로 나이고 들었고, 여성성이 끝난 건지, 생각을 하기도 한다. TV를 시작한지 2년 됐는데, 주로 제 또래 배우들이 엄마를 많이 연기한다. 저 아직 싱글인데.(웃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이 시나리오를 받았다. 제 이야기 같았다. 연기를 30년 했는데, 축하보다는 '뭘 했지?'라는 생각이 함께 들더라. 내가 행복한 건지, 성공한 건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굉장히 우울했다. 인생은 끝까지 우울한 거 같다. 다만 내 마음을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달린 거 같다. 이 시나리오는 나의 그런 모습들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래서 '프랑스여자'는 김호정에게 더욱 특별했다. 그는 "'프랑스여자'는 시 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여유로울 때 카페에서 시 한 편을 읽는 기분이다. 살아가면서 지쳐있을 때 하나씩 꺼내고 음미할 수 있다. 정서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거다"라며 "이 영화 덕에 제가 긍정의 마음으로 다 털고 갈 수 있다.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제가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기억, 후회 등을 털었다. 영화에서는 우울하게 나오지만 긍정의 마인드를 가지게 됐다. 새로운 역할을 '이 배우가 그 배우였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연기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상업영화 등 대형 작품에 대한 기분 좋은 욕심도 내비쳤다. 김호정은 "상업영화는 늘 하고 싶다. 다만 손익분기점을 생각하게 되다 보니 남자들 싸움이나 흥미진진한 영화들이 많다. 그래서 이렇게 제가 주도적인 걸 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저는 늘 열려있다. 나이가 드니까 너그러워졌다. 즐겁고 평온하다. 어린 친구들이 연기를 잘해서 제가 연기를 하든, 뭘 하든 작품적으로 잘 나오면 그만큼 행복한 게 없다. 상업영화, 다양성영화 다 하고 싶다"라고 했다.

'프랑스여자'는 오는 4일 개봉한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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