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니 '봄날은 간다'…라면보다 중요했던 장면 [이승록의 나침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라면 먹고 갈래요?"

이 대사는 사실 영화 속에선 정확히 "라면 먹을래요?"다.

"라면 먹고 갈래요?"와는 미묘한 온도차가 있는데, 대신 이영애는 자취방에서 라면을 끓이다가 무심코 유지태에게 "자고 갈래요?" 묻는다. 마치 "계란 넣어요?" 따위의 말투로 "자고 갈래요?" 묻는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이영애란 바다에, 유지태가 무참(無慚)히 빠져버린 순간이다.

때문에 훗날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묻던 유지태의 자조 섞인 목소리는 허망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다가와 사랑에 빠트릴 때는 언제고 돌연 떠나겠다니, 이영애의 무자비함이 유지태에겐 "자고 갈래요?"란 말을 들었을 때보다 몹시 당혹스럽고 무참(無慘)했을 것이다.

다만 '봄날은 간다'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그 이후의 이야기가 중요한 영화다. '봄날은 간다'가 명작인 이유는 그저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사랑하다 헤어졌습니다' 하는 싱거운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과 이별 그리고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비록 유지태가 이영애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만취해 찾아가서 주정하고, 딴 남자 만나는 이영애를 쫓아가 그녀의 새 차 문짝에 몰래 흠을 내는 게 전부일 정도로, 이별을 맞닥뜨린 유지태는 찌질하고 자기파괴적이지만, '봄날은 간다'에선 결국 유지태가 그 참담한 봄날을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떠나보냈는지 우리에게 선명하게 알려준다.

포기할 줄 아는 용기.

시간이 지나 어느 봄날, 이영애는 불쑥 유지태를 다시 찾아와 "라면 먹을래요?" 물었을 때처럼 "우리 같이 있을까?" 하고 지난 봄날의 재현을 제안하지만, 유지태는 부드럽게 슬며시 이영애의 손을 뿌리친다.

그 순간, 대답 대신 이영애의 손을 조용히 놓던 유지태의 묵묵하지만 단호하고, 단호하지만 애처로운 그 표정이 '봄날은 간다'의 주제다.

유지태에겐 여전히 이영애란 바다의 물기가 마르지 않았고, 유지태의 사랑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지만, 지나간 봄날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단념. 포기할 줄 아는 용기였다.

'봄날은 간다'는 그렇게 유지태와 이영애의 사랑을 빌려 우리에게 새로운 봄날로 나아가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더 이상 지난 봄날에 미련 갖지 말고, 무더운 여름을 견디고 서늘한 가을에 잠시 숨을 돌린 뒤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나면 기필코 새로운 봄날이 찾아온다고.

영국의 펠릭스 데니스가 'Never go back'이란 시에서 노래한 것처럼 말이다.

"Never go back. Never go back.

(중략)

Never return to the bridges you burned.

Never look back. Never look back.

Never retreat to the 'glorious past'."

"돌아가지 마라, 돌아가지 마라,

그대가 불태운 다리로 돌아가지 말아라.

뒤돌아보지 마라. 뒤돌아보지 마라.

'아름다웠던 과거'로 도망치지 말아라."

[사진 = 영화 '봄날은 간다' 포스터, 스틸]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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