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포스트 양희종’ 문성곤, 터널 지나 수비의 핵 되기까지

[마이데일리 = 최창환 기자] “기다려보세요. 군대 다녀온 후에 잘 쓰고 있을 겁니다.” 2015-2016시즌 중반, 출전 기회를 얻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신인 문성곤을 향한 김승기 감독의 전망(혹은 기대)이었다. 실제 군 제대 후 처음으로 치르는 풀타임 시즌, 문성곤은 단숨에 주축으로 자리매김해 안양 KGC인삼공사의 선두 경쟁에 기여하고 있다.

KGC인삼공사는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정규리그서 3위에 올랐다. A매치 휴식기 이후 치른 첫 경기(26일 vs 전자랜드)에서 패했지만, 여전히 1~2위와의 격차는 크지 않다. 김승기 감독 역시 “최소 (4강)직행권을 따내기 위해 끝까지 해볼 것”이라며 총력전을 선언했다.

문성곤은 KGC인삼공사가 주축선수들의 줄 부상에도 상위권을 유지한 데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자원으로 꼽힌다. 폭넓은 수비, 지치지 않는 체력을 바탕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모습은 흡사 롤모델이나 팀 선배 양희종을 연상케 한다.

문성곤은 고려대 2학년 때 처음 성인대표팀에 선발되는 등 일찌감치 잠재력을 인정받은 유망주였다. 2015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1/8의 확률로 1순위 지명권을 손에 넣은 KGC인삼공사의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문성곤은 데뷔시즌 22경기 평균 7분 30초 1.7득점 1리바운드에 그쳤다. 내외곽에 걸쳐 탄탄한 선수층을 구성한 KGC인삼공사에 입단한데다, 김승기 감독 체제로 첫 시즌을 맞이한 KGC인삼공사의 시스템을 익힐 시간적 여유도 부족했다.

문성곤은 “처음에는 힘들었죠. 속상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이 저에겐 큰 약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대학 때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는 걸 인지했었고, 그래서 약간 거만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감독님도 그렇게 느끼셨던 것 같고, 그래서 시련을 거쳤죠”라고 돌아봤다.

문성곤이 지닌 기량과 잠재력은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일각에선 ‘최악의 1순위’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농구 팬이 많은 커뮤니티에서 ‘문성곤이 팀을 잘못 만났다’라는 주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 시기도 있었다.

“아직도 최악의 1순위이지 않나요?”라며 웃은 문성곤은 “그 당시는 1/8 확률이어서 강팀에 갈 수도, 약팀에 갈 수도 있었죠. 운명이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고, 잘 버텨서 여기까지 왔죠. 물론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이 정도로 (기량이)올라온 것만 해도 감독님께 감사드리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수비의 핵, 그리고 ‘포스트 양희종’

군 제대 후인 2018-2019시즌 막판, 주축멤버로서 가능성을 증명한 문성곤은 2019-2020시즌 들어 대단한 성장세를 보여줬다. 압박수비를 비롯해 수비 로테이션 등 KGC인삼공사가 추구하는 ‘공격적인 수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문성곤은 이와 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5년 만에 성인대표팀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김승기 감독은 “수비의 핵이죠. 공격적인 면에서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훨씬 많아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죠. 일단 수비는 완벽해요. 어떤 감독이 어떤 수비를 맡겨도 그 역할을 해낼 거예요. (문)성곤이가 수비에서 에너지를 보여준 덕분에 동료들의 마음가짐도 바뀌었어요. 덕분에 수비훈련이 한결 수월해졌죠. 성곤이가 수비에서 하는 역할은 누구도 못할 겁니다”라며 문성곤에 대한 만족감을 표했다.

문성곤이 고려대 재학시절부터 입단을 희망했던 팀이 바로 KGC인삼공사였다. 롤모델인 양희종이 주축선수로 활약 중인 팀인 만큼, 동료로 그의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양)희종이 형을 롤모델로 삼길 잘한 것 같아요. 제가 중시하는 게 수비인데, 그 부분에서 희종이 형은 명불허전이잖아요. 수비 외에 경기를 풀어가는 부분에서도 희종이 형에게 배울 게 많아요.” 문성곤의 말이다.

양희종은 두 말할 나위 없는 KGC인삼공사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최근 5시즌 연속 수비5걸에 선정되는가 하면, 중요한 경기에서 해결사 면모도 과시해왔다. 양희종은 2011-2012시즌에 KGC인삼공사의 V1을 이끈 위닝샷을 터뜨렸고, 2016-2017시즌 서울 삼성과의 챔프전 6차전에서는 9개의 3점슛 가운데 무려 8개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문성곤 역시 발전된 수비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물론, 3점슛 능력도 크게 향상됐다. 지난달 4일 부산 KT전에서 5개를 모두 성공시키는가 하면, 사흘 뒤 삼성을 상대로는 커리어-하이인 6개를 넣었다.

문성곤은 “감독님, 코치들이 잡아준 것을 토대로 상무에서 많이 연습했죠. 메커니즘이 바뀐 건 아니고요. 팔을 끝까지 뻗고, 포물선을 조금 높게 잡다 보니 좋아진 것 같아요. 일정한 자세로 던질 수 있도록 슛 연습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한 단계씩 성장하는 게 목표”

문성곤은 올 시즌 41경기에 출전, 평균 30분 29초를 소화했다. 팀 내 1위일 뿐만 아니라 10개팀을 통틀어 5번째로 높은 수치다. 내외곽을 오가는 수비를 맡은 와중에도 많은 시간을 소화한다는 것은 그만큼 체력도 강하다는 의미일 터.

문성곤은 이에 대해 “체력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사실 고등학교 때는 슛만 던졌고, 대학 때는 20분만 뛰었으니 체력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없었죠. 지난 여름 동안 준비를 많이 하긴 했어요. 어릴 때 할머니가 장어 등 몸에 좋은 걸 잘 챙겨주신 덕분인 것 같기도 하고요”라고 전했다.

또한 문성곤은 평균 1.80스틸을 기록, 김선형(SK·1.78스틸)을 간발의 차로 제치며 스틸 1위에 올라섰다. 문성곤은 대학시절에도 포워드 최초 대학리그 스틸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문성곤은 스틸이 많은 비결에 대해 “예를 들어 야구에서는 타자가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공을 쳐야 하잖아요. 제 수비가 그런 것 같아요. 상대가 이쪽으로 패스하도록 유도한 후 요령껏 스틸하는 거죠”라고 전했다.

김승기 감독이 추구하는 수비이기도 하다. 김승기 감독은 과거 “상대팀이 패스를 가까운 곳이 아닌 먼 곳으로 시도하도록 유도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멀리서 오는 패스를 받으면, 아무래도 슈팅 밸런스가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첫 패스를 견제하는 게 잘 이뤄져야 하고, 그러면 속공도 잘 나오게 됩니다. 재밌는 농구를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라고 말한 바 있다. KGC인삼공사는 올 시즌 포함, 김승기 감독 부임 후 5시즌 가운데 4차례나 스틸 1위에 올랐다.

수비에서 공헌도가 높은 만큼, 문성곤은 올 시즌 수비5걸을 노릴만한 포워드 가운데 1명으로 꼽히고 있다. 문성곤은 이에 대해 “기량발전상이나 수비상을 받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긴 했지만, 욕심 부리진 않으려고요. 그저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시상식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면 좋겠지만, 사실 문성곤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문성곤은 “안 다치고 시즌을 치렀으면 좋겠어요. 더 잘하면 좋겠지만, 욕심은 없어요. 은퇴시즌도 아니고요(웃음). 올 시즌에 3&D 역할을 맡았잖아요. 다음 시즌,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는 픽앤롤, 슛, 속공 등 한 단계씩 올라가고 싶어요. 늘 지금처럼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도 잊지 말아야겠죠”라고 포부를 전했다.

[문성곤.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최창환 기자 maxwindo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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