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봉준호 감독은 시네마의 전설이 되었다[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의 기택(송강호)의 대사처럼,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수상소감으로 화제를 뿌렸다. 그는 수상소감을 전혀 계획하지 않고 단상에 올라간다고 말했지만, 그가 그동안 외신 인터뷰와 시상식장에서 쏟아낸 촌철살인의 말은 그 자체로 ‘시네마틱’했다. 그의 위트 넘치는 어록 퍼레이드는 지난해 칸 영화제 수상소감부터 시작해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는 순간에 정점을 이뤘다.

“오스카는 로컬영화제”, 아카데미 “봤지? 우린 로컬영화제가 아니야”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10월 '기생충'의 북미 개봉을 앞두고 가진 미국 매체 벌처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영화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음에도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 것 같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상하긴 하지만 큰일은 아니다. 오스카는 국제영화제가 아니라 그저 '로컬(지역)'영화제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보수적인 성향의 아카데미 시상식을 에둘러 비판하는 발언이었다.

이 인터뷰가 소개된 이후 해외에선 “봉준호가 정확한 진실을 말했다” “뼈 있는 농담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아카데미 회원들이 그의 인터뷰를 봤던 것일까. 아카데미의 핵심으로 꼽히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에 이어 국제영화상까지 수여하며 오스카 회원들은 마치 “봤지? 우린 로컬영화제가 아니야”라고 답하는 듯한 수상결과를 내놓았다. ‘기생충’이 ‘1917’을 누르고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아카데미가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방향성을 만천하에 공표한 것과 다름없다.

‘텍사스 전기톱’으로 5등분해서 감독상 트로피를 나눠 갖고 싶다

봉준호 감독은 감독상을 수상한 뒤 ‘아이리시맨’ 마틴 스콜세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1917’ 샘 멘데스, ‘조커’ 토드 필립스 감독에게 존경의 뜻을 전했다. 특히 “아카데미가 허락한다면 텍사스 전기톱으로 5등분해서 나눠 갖고 싶다”고 말했을 때, 객석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봉준호 감독이 의식했는지 모르지만, 실제 미국에서는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 리부트가 진행 중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이날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그가 감독상을 수상하며 마틴 스콜세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영화를 배우던 시절, 항상 가슴에 새긴 말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는 문구로 어느 책에서 읽은 것이다. 바로 위대한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님의 말이다"라고 밝혔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참석자들은 전원 기립해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에게 박수를 보냈다.

실제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모두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살인의 추억’은 범인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만들었고, ‘괴물’은 고교시절 한강다리에 괴생명체가 매달려 있는 것을 목격하고 스크린에 옮겼다. ‘마더’는 김혜자의 얼굴을 스크린에 담고 싶었기 때문에 시작했고, ‘설국열차’는 프랑스 원작 만화를 보자마자 영화화의 꿈을 키웠다. 실제 ‘준’이라는 이름의 개를 키우는데서 착안해 ‘옥자’를 만들었고, 대학생 시절 부잣집에서 과외했던 경험을 살려 ‘기생충’을 연출했다.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 시네마

그는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소감에서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한다. 그 언어는 영화(I think we use only one language, Cinema)"라고 말했다. 과연 그는 ‘단 하나의 언어, 시네마’로 세계 영화계에 금자탑을 세웠고, ‘시네마틱’한 수상 소감으로 다시 한번 영화팬을 열광시켰다.

봉준호 감독은 이제 ‘시네마의 전설’이 되었다.

[사진 = AFP/BB NEWS]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