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리키’ 당신 곁에 우리가 있어요[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필사의 저항이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에서 리키(크리스 히친)는 하루 14시간씩 택배 일에 매진한다. 아내 애비(데비 허니우드) 역시 하루 종일 간병 일을 하다 점점 지쳐간다. 모두 가난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2008년 노던록 은행 파산 이후 실직자가 된 이래 안 해본 일이 없는 리키는 아내의 차를 팔아가면서까지 택배 일에 뛰어든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가난의 끝이 보일 듯 했다. 그러나 세상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가혹한 압박이다. 택배회사 관리자 먼로니(로스 브루스터)는 택배기사에게 휴식과 휴일을 주지 않는다. 쉬고 싶으면 대체기사를 구해오고, 그렇지 못하면 벌금을 내라는 식이다. 몸을 다쳐 병원에 있는데도 위로의 말 한마디는 고사하고, 부서진 기계값을 변상하라는 소리만 늘어놓는다. 그는 ‘수익을 낼 수 있는가, 없는가’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모든 것을 실적으로 평가한다. 기준에 미달되면 결국 퇴출될 것이라는 협박을 일삼는다.

가족의 몰락이다. 켄 로치 감독은 긱 이코노미(비정규 프리랜서 근로 형태가 확산되는 경제 현상) 시스템으로 가족이 무너지는 사례를 취재했다. 리키와 애비는 각각 택배와 간병의 장시간 노동으로 아들 셉(리스 스톤)을 돌보지 못한다. 셉은 학교를 등한시하고, 급기야 가출까지 감행한다. 단란하고 행복했던 가정은 조금씩 허물어진다. 리키는 아들을 위해 일주일만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다. 쉬려면 대체기사를 구하거나 벌금을 내야하니까.

따뜻한 연대다. 언뜻보면 암울한 이야기다. 탈출구가 없는 노동자의 삶에 끝내 탄식이 흘러 나온다. 그러나 켄 로치 감독은 가난한 민중들이 서로 손을 잡는 모습으로 희망을 키운다. 리키는 친구 헨리의 도움을 받고, 딸 라이자는 이웃 재키의 도움을 받는다. 애비가 돌봐주는 환자는 자신이 1984년 탄광파업 때 음식을 나눠줬던 경험을 떠올린다. 그는 애비를 감싸안는다. 버스 정류장의 여인도 울고 있는 애비를 위로한다. 말썽만 피우던 셉도 다친 아빠를 지킨다.

내일은 희망이다. 켄 로치 영화엔 언제나 사회적 약자들이 서로를 돕고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있다.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다니엘 블레이크는 자신이 심장병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웃인 싱글맘 케이티를 끝까지 도와준다. 80대 노감독의 영화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 대고 말한다. 마음으로 이어지는 훈훈한 연대가 사람사는 세상이다.

거기서 희망이 싹튼다.

[사진 = 영화사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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