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감독 “‘블랙머니’는 내 안에 ‘조커’가 숨어있는지 알아보는 영화”[MD인터뷰]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조커’는 불편하고 무서운 영화죠. 흥행이 의아했어요. 왜 그런가 봤더니 관객이 공감을 하더라고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분노하는) 조커가 숨어 있어요. 왜 내 마음 속에 조커가 숨어있는지 알아보는게 ‘블랙머니’죠(웃음).”

‘조커’와 ‘블랙머니’는 전혀 상관 없어 보이지만, 폭주하는 금융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조커’에서 고담시를 장악한 광대 시위대는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떠올리게 하는데, ‘블랙머니’에서도 이 시위는 밑그림으로 등장한다. 소수의 금융 엘리트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좌지우지하는 ‘1%의 세상’에 대해 ‘99%의 대중’은 분노하기 마련이다.

‘블랙머니’는 수사를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막 가는 ‘막프로’ 양민혁(조진웅) 검사가 자신이 조사를 담당한 피의자의 자살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되고, 누명을 벗기 위해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다 거대한 금융 비리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금융범죄 실화극이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실화에서 오는 끓어오르는 분노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실제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으로 4조 원대의 차익을 챙기고도 한국 당국이 시일을 끌어 손해를 봤다며 5조 원대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복잡했는데, 오히려 그 점이 더 재미있더군요. 저는 대중영화 감독입니다. 관객이 많이 보길 원하죠. 그래서 경제를 전혀 모르는 양민혁 검사가 사건을 하나 둘 씩 파헤쳐가는 구조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관객은 양 검사를 따라가며 사건의 실체를 마주하는 거죠.”

정철진 경제평론가는 최근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해 “실제 사건의 거의 90퍼센트 이상을 압축적으로 현실감 있게 담아내면서 묵직한 돌직구처럼 빠르게 전개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영화의 핵심은 ‘돈키호테’를 연상시키는 양민혁 검사다. 좌충우돌 캐릭터가 베일에 가려진 헐값 매각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영화의 재미는 극대화된다.

“그동안 캐릭터를 잘 못그렸어요. ‘부러진 화살’에서 배웠죠. 영화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이 모두 괴짜였거든요. 두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관객이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캐릭터를 어떻게 묘사하면 흡인력이 생기는지 확실하게 알게 됐죠.”

조진웅은 양민혁 검사에 빙의됐다. 처음엔 오버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몇 차례 테스트를 해보니까 “맞아. 양민혁 검사는 저렇게 행동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촬영이 있는 날, 조진웅이 부장검사를 상대로 대드는 연기에서 확신을 얻었다.

“내가 생각하는 플러스 알파를 보여줬다고 말해줬죠. 그랬더니 조진웅이 ‘사실은 제가 양민혁입니다’ 그러더군요(웃음)”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에 이어 ‘블랙머니’에 이르기까지 정지영 감독은 실화에 기반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다음 영화도 실화를 다룬다. 1999년 2월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한 슈퍼에서 할머니가 질식사한 강도 치사 사건을 스크린에 옮긴다. 당시 10대 등 3명이 범인으로 몰려 징역형을 받고 복역했다. 이후 진범들이 자백하자 재심을 청구, 17년만에 무죄로 확정됐다. 그는 영화가 우리 시대와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우리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문하며 메가폰을 잡는다.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함께 생각해보길 바라며 영화를 찍습니다. ‘블랙머니’도 과연 우리에게 금융 자본주의가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고민하고 토론해보길 바라면서 만들었어요. 론스타에게 또 5조원의 혈세를 줘야한다는게 납득하기 힘들잖아요.”

[사진 제공 = 에이스메이커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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