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시민 노무현’, 사람사는 세상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 ‘시민 노무현’을 보면 두 가지 슬로건이 떠오른다. 하나는 환경운동가들의 구호인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국지적으로 행동하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향에 내려가 봉화산 숲 가꾸기, 화포천 생태습지 복원, 오리농법, 장군차 심기 등을 실천했다. 이웃과 힘을 합해 화포천의 쓰레기를 치우는 등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가꿔 나갔다. 전직 대통령의 직위를 내려놓고 농민으로 고향에 스며들었다. 지방 살리기는 그의 오랜 꿈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의 선언이다. “마르크스는 세계를 변혁하라고 했고, 랭보는 삶을 변화시키라고 했다. 우리에게 이 두 가지 명제는 하나이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탈권위주의를 표방하며 한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세상만 바꾼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거듭났다. 장화를 신고 논바닥에 들어가 농부의 삶을 살았다. 그는 국지적으로 행동하는데 앞장섰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슬로건은 ‘사람사는 세상’이다. 사람사는 세상이란 착한 사람이 반칙과 특권 없이도 성공할 수 있는 세상, 한번 실패해도 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 공정한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도 부당한 특권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패자를 배려하는 그런 세상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의 못다 이룬 꿈을 현실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영화는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454일간의 봉하마을 생활을 담았는데, 유독 딱 한 장면에서 젊은 시절의 이야기가 나온다. 1988년 부산 동구의 초선 국회의원으로 국회에서 연설하는 모습이다. 특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안 하는 세상” “하루하루가 신명나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관객은 눈시울을 적신다.

이 장면은 노 전 대통령이 정치 신인 시절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초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태어나도 민중을 위해 고난의 가시밭길을 가겠다는 결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 연설에 야유를 보내는 일부 정치인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구나라는 씁쓸함도 찾아온다. 무엇보다 노 전 대통령이 단상에서 내려간 뒤 카메라가 계속 비춰주는 마이크는 ‘제2의 노무현’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에서 실천 가능한 ‘사람사는 세상’은 무엇일까. 정치 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부터’ 변하는 것이 아닐까. 199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 대학 로버트 포겔 교수는 어느날 제자에게 “세상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포겔 교수는 입가에 웃음을 지은 뒤 이렇게 말했다.

“자네의 이웃이 다쳤을 때, 반창고를 붙여주게. 그게 세상을 바꾸는 일일세.”

[사진 제공 = 콘텐츠판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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