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빅쇼트’ ‘바이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아담 맥케이 감독은 에두르지 않고 직접 찌른다. ‘빅 쇼트’에선 월스트리트의 도적적 해이를, ‘바이스’에선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부통령 딕 체니의 만행을 파헤친다. 그는 ‘데드풀’처럼 ‘제4의 벽’을 뛰어넘어 관객과 소통하는가 하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연출로 흥미를 끌어 올린다. 아담 맥케이는 미국을 지탱하는 두 개의 축인 금융과 권력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얼마나 부실한 시스템 위에 국가가 운영되는지 폭로한다.

‘빅 쇼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우스꽝스러운 전개를 신랄하게 보여준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돈을 빌리는지도 모른채 넙죽 대출을 받아 5채씩의 집을 샀던 스트리퍼를 비롯한 미국인들은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됐다. 부실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아무도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허황된 미래만 꿈꾸다 바닥으로 추락했다. 800만명이 직장을 잃었고, 600만명이 집을 잃어 홈리스로 전락했다.

‘바이스’의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는 ‘밥버러지’로 불린 예일대 중퇴생이었다. 음주운전에 싸움만 일삼던 그는 아내(에이미 아담스)의 성화에 정신을 차린 뒤 국회 인턴으로 들어가 11년만에 최연소 백악관 수석 자리에 올랐다. 이후 대기업 CEO와 펜타곤 수장을 거쳐 부통령까지 올라 미국과 전 세계를 주물렀다. 멍청한 부시(샘 록웰)를 만나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딕 체니 부통령(Vice)은 본격적인 악(Vice)의 이빨을 드러내며 권력을 남용하고 사익을 추구했다.

아담 맥케이는 금융과 권력의 허술한 시스템에 경고등을 울린다. ‘빅 쇼트’에선 철저한 관리 감독이 이뤄지지 않았던 파생금융상품이 단기간 내에 퍼져나가 미국을 수렁에 빠뜨리는 과정을 담아냈다. ‘바이스’에선 미국 헌법의 허점을 공략해 제 입맛대로 부통령의 권한을 늘리는 딕 체니와 신보수주의자들의 탐욕을 추적한다. ‘악’은 견제받지 않는 시스템 속에서 독버섯으로 자라난다.

딕 체니는 훗날 국방장관이 될 도널드 럼즈펠드(스티브 커렐)의 ‘충실한 개’로 경력을 시작했다. 권력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귀신같이 간파했던 그는 노련한 낚시꾼처럼 누군가 미끼를 물면 잽싸게 잡아당겨 원하는 것을 손아귀에 넣었다. 부시는 딕 체니의 미끼에 제대로 낚인 대통령이었다. 딕 체니의 낚시질과 부시가 걸려드는 모습을 절묘한 편집으로 이어붙인 대목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데 혈안이 돼 있던 ‘빅 쇼트’의 금융인과 ‘바이스’의 딕 체니는 미국과 전 세계를 위기에 빠뜨려놓고 유유히 빠져 나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금융계가 휘청거렸지만, CEO들은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챙겼다. 적군에 대한 고문, 무차별 도감청을 가능케한 애국법에 이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테러집단 ISIS를 방치했던 딕 체니는 “당신들은 (투표로) 나를 선택했고, 나는 당신들의 요구대로 행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때, 블랙코미디는 공포영화로 다가온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콘텐츠판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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