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은의 안테나] 피해자 된 고준희, '그것이 알고싶다'는 책임이 없을까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배우 고준희가 해명과 동시에 참담한 심경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소문의 시작인 SBS 간판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는 침묵이다. 낚싯대를 던져 미끼를 물렸지만, 회수하지 않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달 23일 밤 최근 사회 전반을 뒤흔든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를 취재해 방영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중심인물인 빅뱅 출신 승리, FT아일랜드 출신 최종훈, 가수 정준영 등이 속해 있는 카카오톡 채팅방도 공개됐다. '버닝썬 게이트' 촉발 이후 진실을 밝히는 데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채팅방이었기에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무고한 피해자가 생겨났다. 승리가 일본 유명 건설회사 오너로부터 투자를 받는 과정을 파헤치며 접대 의혹을 제기했는데, 그들이 언급한 '여배우'가 고스란히 공개됐다. 물론, 실명 등의 구체적인 신상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꼬리에 꼬리를 물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됐다. '여배우', 'OO누나', '뉴욕 갔어' 라는 등의 짧은 대화들은 자칭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파헤쳐지기 시작했다.

한 네티즌은 이를 고준희라고 추측했다. 당시 승리와 같은 소속사였던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친분 등이 그 이유였다. 이러한 소문은 어느새 사실로 둔갑해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게재됐고 일부 언론 등에서도 우회적으로 보도됐다. 고준희는 자신의 SNS에도 루머 악성 댓글이 연이어 달리자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으나 소문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있었다. 조롱이 즐비했다. 고준희는 순식간에 거짓말쟁이로 몰렸다.

재차 고준희는 장문의 글을 통해 '승리 카톡' 속 여배우가 아님을 단호하게 밝혔다. 그러면서 "저는 제 의도, 진실과는 무관하게 타인에 의해 그러한 소문의 중심이 되어 여배우로서 수치스러운 상황에 있는 '피해자'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비난 여론은 거세다. 일부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라며 자신의 의심을 합리적인 것으로 포장하는, 허울 좋은 말을 외치고 있다.

누가 굴뚝에 불을 지폈을까. '그것이 알고싶다'는 SBS를 대표하는 시사 프로다. 미제 사건은 물론, 각종 미스터리한 사회의 사건, 사고 등을 심도 있게 다루며 오랜 기간 시청자들의 신뢰와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고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추구하는 저널리즘적인 가치에 다수가 동감했기 때문이다.

늘 완벽한 진실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이 알고싶다'는 여느 탐사 보도 프로그램보다도 사실 관계 파악에 힘써왔다. 제보자, 피해자 보호에는 더욱 애를 썼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하는 모든 인물들은 대역이다.

그러나 이번 채팅방 공개는 신중을 기해야 했다. 뉴욕이라는 구체적인 지명을 언급해서는 안 됐고, '여', '배우'라는 명확한 성별과 직업군을 지칭해서는 안 됐다. 승리 친구들은 같은 동료들까지도 성적으로 취급한다는 걸 알리려 했다면, 여느 때처럼 추측이 불가능한 범위로 재구성을 해야 했다. 비단 고준희만의 문제가 아니다. 무수한 '여배우'들이 피해자가 될 뻔 했기 때문이다.

앞서도 일명 '정준영 카톡'이 공개되는 과정에서 여러 피해자들이 생겨났다. 주로 여자 아이돌 , 여성 배우들이 그 대상이었다. 피해자가 된 그들은 루머를 부인해야 했고, 법적 대응을 시사해야 했다. 부정적인 소문은 대중의 생각에 손쉽게 침투한다. 진실 여부와 달리, 떼어낼 수 없는 꼬리표가 된다. 이러한 상황은 수없이 이어져왔다. 이 가운데, 미끼를 던지는 실수를 반복한 '그것이 알고싶다'가 피해자 만들기에 일조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SBS 방송화면]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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