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어스’의 미궁을 들어가는 4개의 실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조던 필 감독은 ‘공포’로 인간과 세상의 이면을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런 곳이었다는 것. 그는 섬뜩한 방식으로 백인의 이기적 욕망(‘겟아웃’)과 인간의 이중적 속성(‘어스’)으로 들어간다. ‘겟아웃’에서 백인의 테러가 자행되는 곳도, ‘어스’에서 충격적 진실이 벌어지는 곳도 지하이다. ‘어스’는 “미국엔 셀 수 없이 많은 지하 터널이 있는데, 아무도 그 용도를 모른다”는 내용의 자막으로 시작한다. 조던 필은 관객을 미궁으로 끌고 간다. 그렇다면 아리아드네의 실이 필요할 것이 아닌가.

너 자신을 찾아라(Find Yourself) =조던 필은 ‘도플갱어’ 신화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는 자’라는 뜻이다. ‘또 하나의 자신’을 만나는 심령현상으로, 독일어일 뿐이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 공통으로 나타난다. 극 초반부 어린 소녀가 해변의 ‘귀신의 집’으로 들어가는데, 그 입구에 ‘너 자신을 찾아라’고 쓰여있다. 이 주문은 너의 본성이 무엇인지 대면하라는 뜻으로 들린다. 네 안의 어둠 속으로 깊이 들어가 네가 과연 누구인지 깨달으라는 것. 소녀는 그곳에서 누구를 만났던 것일까.

우리는 미국인이다(We Are Americans) =행복한 가정에 도플갱어 4명이 도착해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한 여인이 똑같이 생긴 여인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우리는 미국인이다.” 이 대화는 영화를 가족의 차원에서 국가 차원으로 단숨에 이동시킨다. 영화제목 ‘US’는 ‘우리’라는 뜻도 있지만, 미국(United States)의 약자이기도 하다. 지금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외국인을 쫓아내고,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등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우며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어스’는 미국 현실에 대한 무서운 은유다.

핸드 어크로스 아메리카(Hands Across America) =영화의 배경은 산타크루즈 해변이다. ‘죠스’처럼, 아름다운 해변은 무서운 공간으로 변한다. 낙관과 희망은 한 순간에 비관과 절망으로 바뀐다. 핸드 어크로스 아메리카 운동은 1986년 ‘위 아 더 월드’ 등을 부르며 15분간 손을 잡는 퍼포먼스로 굶주린 사람들을 위한 기금 모금을 독려한 캠페인이다. 33년전의 아름다움은 ‘어스’에서 기괴스러운 모습으로 변한다. 편리함을 상징하는 흰색 인공지능 스피커에 피가 튀기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조던 필은 밝음 속의 어둠을 응시한다.

예레미야(Jeremiah) 11장 11절 =소녀가 부모와 함께 놀이공원에 갔을 때 한 노숙인은 ‘예레미야 11장 11절’이라고 쓰여 있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과연 그렇다. 전 미국에 닥친 폭력적인 도플갱어의 습격을 막을 방법이 없어 보인다. 여인은 외친다.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지 다 알고 있어.” 이제 미국이 아닌 어디론가 도망쳐야한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그들’이다. 그들에게 내린 재앙은 곧 우리가 받는 재앙이다.

[사진 제공 = UPI]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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