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일일시호일’,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오늘(1월 25일)은 24절기 가운데 대한(1월 20일)과 입춘(2월 4일) 사이에 있는 날이다. 겨울 절기의 마지막이 대한이고 봄 절기의 시작이 입춘이다. 우리는 겨울과 봄의 환승역을 지나고 있다. 영화 ‘일일시호일’의 노리코(쿠로키 하루)는 다도를 배우고 첫 번째 맞는 대한에 차(茶)의 무게와 촉감을 느낀다. 몇 년이 흐르고 맞는 대한에 그의 삶은 고달프다. 취직을 못해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데다 애인에게 배신까지 당했다. 다케타(키키 키린) 선생님은 “제일 추울 때 꽃도 핀다”고 넌지시 일러준다.

노리코는 어린 시절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을 이해하지 못했다. 20대에 다시 ‘길’을 보고 서럽게 울었다. 세상은 바로 알 수 있는 것과 금방 알 수 없는 것으로 나뉜다. ‘길’이 그렇듯이, 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왜 힘들게 차를 마셔야하나 하고 의아해했던 노리코는 시간이 지나고 절기가 거듭될수록 다도와 계절에 빠져든다. 하지의 빗소리는 가을비와 달랐고, 입추의 폭포소리는 몸과 마음에 스며들었다. 입동엔 더운물과 찬물의 미세한 차이를 깨달았고, 대서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내면의 무엇인가가 바뀌어 가는 것을 느꼈다.

노리코는 다도를 배우며 계절의 흐름에 온 몸을 맡기는 법을 조금씩 터득해 나간다. 하루 아침에 될 일이 아니다. 인생의 풍파를 어느 정도 겪어봐야 겨우 알 수 있는 감각이다. 24절기를 반복하면서 자기만의 삶의 리듬과 호흡을 배우던 그는 1994년부터 2018년까지 24년간, 개띠의 해를 두 번 반복하고 나서야 제자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위치에 선다. 다코타 선생은 누구에게라도 정성을 다해 차를 대접하라고 가르친다. 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 인생은 단 한 번 뿐이다. 그래서 제목이 ‘일일시호일’, 매일 매일 좋은 날이다.

이 영화를 보면 윤대녕 작가의 삶이 떠오른다. 그는 절기마다 만나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 오래 만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내년 입춘에 봅시다”라고 말하면, 상대는 “왜 하필 입춘이죠?”라고 묻는다. 윤대녕은 “당신은 입춘에 만나기 좋은 사람 같아서요”라고 답한다. 1년이라는 시간이 길면 “다음 입춘까지는 많이 남았으니, 초복에 만나 몸보신이나 합시다”라고 제안한다. 절기의 리듬에 사람의 인연이 더해져 훈훈한 풍경이 그려진다. 이 에피소드를 소개한 윤대녕 산문집의 제목은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이다.

당신은 극적인 순간에 누구와 만나고 싶습니까.

[사진 = 영화사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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