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현 "5년 전 아쉬웠던 '엘리자벳', 다시 오르니 행복해요" [MD인터뷰①]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순수함, 발랄함, 자유의지, 희망, 절규, 혼란, 굴복, 피폐함. 한 사람이 생애 느낄 수 있는 각종 감정들을 뮤지컬 '엘리자벳'이 170분으로 아우른다. 고난의 연속 안에서 성장하는 여인의 이야기는 무척 익숙한 얼개이나 '엘리자벳'은 성장이 주는 희망 대신 비극 아닌 비극으로 그 끝을 달리한다.

'엘리자벳'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던 아름다운 황후 엘리자벳의 일대기를 그려낸 작품으로, 합스부르크 왕가 역사와 '죽음'(Der Tod)'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결합시켜 화려한 무대 예술의 극치를 자랑한다. 타이틀롤을 맡은 뮤지컬배우 김소현은 많은 이들이 사랑했지만 자신은 비극적인 삶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황후 엘리자벳, 그 자체로 분했다.

뮤지컬배우 손준호와 결혼, 손주안 군을 출산한 뒤 2013년 '엘리자벳'을 통해 무대 위로 컴백한 김소현에게 이 작품은 더욱 특별하다. 뮤지컬계에서 여전히 공고한 입지를 가진 배우임을 재확인한 것과 더불어 넓은 연기 스펙트럼의 소유자임을 증명했기 때문. 우아한 아우라를 가진 외형 덕에 황후 이미지를 손쉽게 구축하게 된 것도 있지만, 그는 모성애라는 감정을 기반 삼아 연기력까지 함께 인정받았다. '완벽한 황후'라는 호평이 쏟아진 이유다.

"엘리자벳의 아들인 루돌프와 관련한 부분은 표현하기가 힘들었어요. 아이가 울면서 매달리는데 차갑게 돌아선다는 건 제 안에는 전혀 없는 감정이거든요. 연습실에서는 눈물이 나서 표현을 못할 정도에요. 하지만 연습실에서 극한의 감정까지 가 봐야 무대 위에서 객관적으로 표현을 할 수가 있더라고요. 또 뮤지컬 '명성황후', 결혼, 출산 등 여러 경험들이 높은 연령대의 이해도를 높여준 거 같아요. 인간이 단번에 경험할 수 있는 연령대가 적은데 배우들은 그걸 뛰어 넘어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인생 경험이 상당히 중요해요. 돈 주고도 살 수 없죠. 다시 이 작품을 하게 돼서 너무 소중하고 행복해요. 관객 분들도 5년 전보다 더 행복해 보인대요. 그래서 사진도 매일 많이 찍고 있어요.(웃음)"

김소현은 2013년 '엘리자벳' 재연 당시, 한 달 정도 되는 짧은 기간 탓에 잘해야겠다는 마음만 앞서 극을 즐기지 못했다고 전했다. 5년이 지난 지금이 되어서야, 배우로서, 여성으로서도 와닿는 바가 크게 달라졌다고.

"5년 전에는 다시 데뷔하는 느낌이었어요. 이전 작품들보다 스케일이 크고, 연기 변신까지 할 수 있는 큰 작품이었거든요. 다행히 좋은 평들을 많이 해주셨지만 스스로는 아쉬운 점이 많았죠. 그래서 꼭 한번은 다시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배우가 꼭 작품을 하다 보면 마지막에 후회가 되곤 해요. 이번만큼은 그동안 너무 하고 싶었던 작품이니까 후회 없이 무대 위에서 모두 표현하고 싶다는 바람이 제일 커요."

김소현은 인물의 이해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 '명성황후' 성남 공연에 앞서 잠깐 빈 시간을 활용해 가족과 함께 직접 오스트리아를 찾았다.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엘리자벳', '마리 앙투아네트', '노트르담 드 파리' 등 각종 뮤지컬들의 주무대가 됐던 장소다. 동시에 김소현은 매 작품마다 작성 중인 특별 '작업 노트'를 공개하며 피 나는 노력을 전했다. 김소현의 글씨로 빼곡하게 적힌 작품 노트에는 매회 놓친 부분들, 감정 변화, 역사 정리, 실수 등이 담겨있었다.

"저는 매 공연을 녹음해서 들어요. 매일 들으면서 1막, 2막 나눠 체크하고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정리하죠. 노트가 채워질수록 저도 역할이 채워진 느낌이 들어요. 자연스레 무대에서도 생각이 나고요.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느꼈던 걸 구체적으로 적어놓으면 다시 상기시킬 수 있거든요. 스스로 편한 감정에 빠지려 할 때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기도 하고요. 엘리자벳의 일기 같아요."

김소현의 엘리자벳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른바 '보호'해주고 싶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말을 타는 것을 좋아하고 외줄 위를 오르고 싶었던 명랑한 어린 시절의 '씨씨'(엘리자벳의 어린 시절 애칭)와, 중반부의 처연함을 머금은 엘리자벳 간의 진폭을 섬세하게 키운 덕이다. 엘리자벳의 몸부림을 극대화시키고, 관객이 쉽게 그녀의 삶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매 장면 표현하는 감정들 다르기 때문에 여배우로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웰메이드 캐릭터에요. 그러나 단순히 줄거리만 보면 이상한 여자라고 느낄 수도 있어요. 남편과 아들을 등지고, 매일 미모만 가꾸고, 죽음이라는 존재 때문에 우울증을 앓고, 이런 것들이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 여자의 마음을 공감되게 표현하는 게 어려운 숙제였어요. 감정의 결들을 잘 쌓지 않으면 순식간에 날아갈 수 있어요. 사실 '명성황후'나 '마리 앙투아네트'는 외부의 자극을 받으면서 불쌍하게 표현이 돼요. 반면 '엘리자벳'은 내면의 싸움을 표현하기 때문에 커튼콜에서 박수를 받기까지 정말 어려워요. 엘리자벳이라는 여자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깊은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죠."

'엘리자벳'이 사랑받는 이유는 극적인 서사, 화려한 무대 장치가 돋보이는 연출뿐만 아니라 막이 내린 뒤에도 쉽게 잊히지 않는 넘버의 중독성이다. 특히 1막 중반에 등장하는 '나는 나만의 것'은 엘리자벳을 대표하는 넘버로, 오케스트라 연주가 끝나면 열화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진다. 김소현은 자신의 특기인 성악 발성과 진성을 오가며 자유를 토해낸다. 마지막에 응축된 감정을 내지르는 고음은 가슴 떨리는 쾌감까지 안긴다. 그러나 정작 그는 "매일 '나는 나만의 것'을 부를 때마다 혼자 싸운다"고 털어놨다.

"'나는 나만의 것'을 소화하기가 너무 어려운 거 같아요. 사실 그 넘버에서 '다 이뤘다' 식으로 표현하면 뒤에 나올 게 없거든요. 즉, 미완성인 넘버에요. 그런데 워낙 기대가 큰 빅(Big)넘버이다 보니까 파워풀하게 불러요. 절망 속 처절함이 아니라 희망적인 부분인데도, 관객 분들이 원하시는 건 처절한 느낌이거든요. 잘 불러도 문제고 못 불러도 문제고.(웃음) 모든 배우들이 부담스러워하는데, 극복해야 하죠. 또 같은 엘리자벳을 연기하는 옥주현 씨와 신영숙 씨는 키가 커서 성큼성큼 걷는데 저는 '다다다다' 달려서 되게 힘들어요. 우리나라에서만 그래요. 다른 나라에서는 다 서서 부르는데 말이죠. 하하. 대신 카타르시스가 더 느껴져요."

더불어 김소현은 "'내가 춤추고 싶을 때'라는 넘버 장면도 우리나라에서만 뛴다. 계속 턴테이블을 돈다. 심지어 의상은 벨벳이라 굉장히 무겁다. '아무것도'라는 넘버에서도 드레스를 밟고 쉴 새 없이 계단을 오르며 노래를 부르는데 너무 힘들다"고 고개를 저어 웃음을 자아냈다.

"기술적인 것들을 표현하면서도 감정적인 걸 놓치면 안 되고, 보컬적으로도 채워야 해요. 정말 힘들죠. 그런 걸 만들어주신 연출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웃음) 하지만 배우로서 느껴지는 희열이 있는 거 같아요. 또 '엘리자벳'을 처음 한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느낌이 있어요. 저번 재연에서 제가 (옥)주현 씨한테 '정말 이걸 한단 말이야?'라고 물어봤는데 이번에 (신)영숙 씨가 똑같이 묻더라고요. 그만큼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에요."

한편, 김소현을 비롯해, 옥주현, 신영숙, 김준수, 빅스 레오, 박형식, 이지훈, 박강현, 강홍석, 윤소호, 최우혁 등이 출연하는 '엘리자벳'은 2019년 2월 10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공연한다.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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