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재의 전임감독 부정, 길을 잃은 한국 야구대표팀 [이후광의 챌린지]

[마이데일리 = 이후광 기자]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진 ‘전임감독제’다.

선동열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는다. 선 감독은 지난 14일 서울 도곡동 한국야구위원회 7층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를 발표했다. 이에 앞서 사퇴문으로 입장을 표명한 선 감독은 “총재를 직접 만나 사직 의사를 밝혔다. 사퇴를 통해 국가대표 선수들의 명예를 지키고 싶었다”는 짧은 말과 함께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기자들의 질의응답이 이어졌지만 선 감독은 “그 동안 감사했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선 감독은 지난해 7월 대한민국 최초의 야구대표팀 전임감독으로 선임됐다.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아시안게임 등 연령별 대회로 세대교체를 진행한 뒤 야구가 정식 종목으로 부활하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최종 목표였다. APBC에서 값진 경험을 쌓았고,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임감독제 시행으로 그 동안 국제대회 때마다 골머리를 앓았던 대표팀 감독 문제는 논외가 됐다.

도쿄올림픽까지 순항할 것 같았던 선동열호는 아시안게임 선수 선발 논란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오지환(LG), 박해민(삼성) 등 병역 미필 선수들에게 혜택을 줬다는 강한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심지어는 대표팀 감독 최초로 국정감사에 출석해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의 원색적인 비난에 시달렸다. 선 감독은 “원칙대로 뽑았다”는 소신을 밝혔지만 여론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결정타는 정운찬 KBO 총재의 국정감사 발언이었다. 정 총재는 이 자리에서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전임 감독제를 찬성하진 않는다”는 사견을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총재가 국정감사에서 하는 말이 사견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KBO는 “총재님의 사견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선 감독이 TV로 선수들을 본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감독의 불찰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선 감독을 대놓고 비판했다.

결국 국가대표 감독을 포함 야구계의 방패막이 돼야 할 KBO 수장이 무책임한 사견으로 선 감독과 전임감독제를 모두 혼란에 빠트렸다. 이제 선 감독의 돌연 사퇴로 감독 자리는 1년 4개월 만에 다시 공석이 됐다. 일단 차기 감독 선임 이전에 전임감독제 존폐 여부부터 따져야 한다. 총재의 전임감독제 부정으로 과제 하나가 더 늘어난 셈이다. KBO 장윤호 사무총장은 “갑작스럽고 당혹스럽다. 현재로선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 야구의 최근 국제대회 성적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지난해 홈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충격의 조별 예선 탈락을 겪었고, 아시안게임에선 실업 선수들 위주의 대만에 무릎을 꿇었다. 사실 전임감독제를 도입한 건 WBC 탈락에 따른 자성의 성격이 짙었다. 안정적인 대표팀 운영과 세대교체를 통해 2020년 도쿄올림픽 금메달을 정 조준했다.

그러나 총재의 사견 및 선 감독의 사퇴로 사실상 모든 게 백지화됐다. 도쿄올림픽 예선으로 치러지는 2019 프리미어12는 불과 1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 설령 전임감독제 검토 없이 프리미어12만을 겨냥한 감독 선임을 추진한다 해도 이러한 분위기서 대표팀을 맡을 인물은 많지 않아 보인다. 협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사령탑 자리는 절대 환영받을 수 없다. 한국 야구대표팀이 갈 길을 잃었다.

[정운찬 KBO 총재(첫 번째), 선동열 감독(두 번째). 사진 = 마이데일리 DB]

이후광 기자 backligh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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