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22’,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차순 할머니의 ‘아리랑’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아리랑’이 구슬프다. ‘백도라지’가 애통하다. 박차순(중국명 마오인메이)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다. 10대에 끌려갔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돌아오지 못했다. 한국어를 거의 다 잊었지만,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등 몇 개 단어와 ‘아리랑’ ‘백도라지’의 가사는 선명하게 기억했다. 삶의 끝자락에서 부르는 비통한 가락이 귓가를 울린다.

궈커 감독의 한중 합작 다큐멘터리 영화 ‘22’는 중국 내 생존해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일상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20만명에 달했던 중국인 피해자는 촬영을 시작했을 당시 22명만이 생존했고, 2018년 8월 현재 6명만 남았다(한국인 생존자는 27명이다).

‘22’는 천린타오 할머니 장례식으로 시작해 장가이샹 할머니 장례식으로 끝난다. 겨울에서 시작해 겨울로 끝난다. 할머니는 여전히 차디찬 역사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궈커 감독은 흰 눈이 덮였던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는 모습으로 영화를 마무리했다. 할머니의 아픈 역사에 한 줄기 따뜻한 빛이 내리기를 바랐을 것이다.

30여년간 일본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던 장솽빙(은퇴교사)은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일본은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는 “이럴 줄 알았으면 할머니들을 귀찮게 하지 않았을텐데”라고 말하며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간다. 카메라는 먼 발치에서 ‘문이 닫히는’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흐른다. 이 짧은 시간에 감독의 안타까운 마음이 배어있다. 6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모두 돌아가시면 ‘역사의 문’이 닫힐 테니까.

‘아리랑’ ‘백도라지’를 불렀던 박차순 할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역시 20만명에 달했던 한국인 피해자의 상당수는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잔학한 일본군에 고통을 당했다. 많은 피해자가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지 못했다. 중국은 공산화됐고, 한반도는 분단됐으며, 한국전쟁까지 터졌다. 박차순 할머니처럼 귀국하지 못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디아스포라(뿌리뽑힌 사람들)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어느 연구자의 말처럼, 그 오랜 세월 동안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존재하지도 존재하지 않지도 않은 존재”로 이국땅을 떠돌았다. 누가 그 분들의 한 맺힌 삶을 기억해야 할 것인가.

이제 ‘기억과의 싸움’을 시작할 때다. 독일은 예술가, 시민 등이 중심이 되어 1992년부터 ‘걸림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동판에 가로·세로 10㎝ 크기의 돌을 붙인 ‘걸림돌’을 나치 시절 학살된 사람들(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반사회적이라고 낙인찍힌 종교인, 장애인 등)이 살았던 집 앞 보도에 심었다. 동판에는 학살된 사람의 이름, 출생 연도, 사망장소 등의 정보를 새겨 넣었다.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이 걸림돌을 밟을 때마다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아시아의 홀로코스트’로 부를만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역사의 저편으로 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걸림돌 프로젝트 같은 ‘기억 사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첫 번째 발걸음이다. 영화 ‘22’의 피해자들을 단지 중국인이라고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있겠는가. 중국, 한국 북한, 대만, 홍콩, 필리핀, 싱가포르, 네덜란드, 호주, 뉴질랜드 등 많은 나라의 여성이 참혹한 고통을 겪었다. 이 분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여성인권과 평화의 숭고한 가치를 되새기는 일이다.

생존자

펜환잉

천롄춘

왕즈펑

리메이진

웨이샤오란

류가이롄

사망자

차오헤이마오

장셴투

리슈메이

하오쥐샹

자오란잉

런란어

허위젼

류펑하이

천야벤

황유량

푸메이쥐

린아이란

푸구이잉

리아이롄

이수단(리펑윈)

박차순(마오인메이)

[사진 제공 = 아시아 홈 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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