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쓰리 빌보드’, 가면서 결정하자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쓰리 빌보드’는 ‘오인에 의한 확신의 위험성’을 다룬 영화다. ‘오인’의 사전적 의미는 ‘잘못 보거나 잘못 생각함’이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므로, 오인의 유혹에 쉽게 휘말린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감정은 빠르지만, 이성은 느리다. 볼테르가 일찍이 갈파했듯, “의심하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확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는 7개월전 참혹하게 살해된 딸 안젤라의 범인이 잡히지 않자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마을 외곽 대형 광고판에 세 줄의 광고 메시지를 담아 경찰수사를 촉구한다.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해럴슨)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밀드레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더 세게 다그친다. 윌러비를 존경하는 부하 딕슨(샘 록웰)은 밀드레드의 흑인 친구를 대마초 보유 혐의로 체포해 경찰을 괴롭히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다.

밀드레드와 딕슨은 증오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밀드레드는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경찰을, 딕슨은 흑인을 증오한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이들은 정확한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행동으로 위험을 자초한다. 밀드레드는 광고판을 불태운 범인이 경찰이라고 ‘단정’하고 경찰서를 불태워 딕슨에게 화상을 입힌다. 딕슨은 윌러비 서장이 광고판 때문에 죽었다고 ‘잘못 생각’해 광고회사 직원 웰비를 구타한 뒤 2층에서 내던진다. 이들은 감정이 촉발한 오인에 의한 확신으로 잘못된 복수를 저지른다.

반면 윌러비 서장은 죽기 직전, 밀드레드와 딕슨에게 편지를 보내 ‘이성적’으로 행동하라고 충고한다. 먼저 밀드레드에게는 범인을 못잡아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어떤 놈이 술집이나 감방에서 자랑처럼 늘어놓다가 잡히는 경우도 있다”는 글을 남긴다. 실제 그런 ‘사실’이 있었으므로 언젠가 범인이 검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준다. 딕슨에게는 “증오로는 아무 것도 해결못해. 침착함과 생각이 해결하지”라고 강조한다.

윌러비의 이성적 조언은 나중에 두 사람을 각성시킨다. 이들은 ‘오인에 의한 확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극 초반부 밀드레드가 광고회사를 찾았을 때 창문틀에는 뒤집혀져 발버둥치는 벌레 한 마리가 있었다. 밀드레드는 벌레를 바로 세워 제 갈길을 가게 한다. 밀드레드 시점으로 보면, 이 영화는 증오의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한 사람이 냉철한 이성을 되찾아 길을 떠나는 이야기다. 딕슨 역시 자신의 몸을 희생해가며 ‘증거’를 찾아내 과학적 방법으로 범인을 잡으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딸을 죽인 범인이 아니라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악당을 찾아 떠나는 길 위에서 딕슨이 밀드레드에게 묻는다.

“그 사람 죽일 거예요?”

“가면서 결정하자.”

이들은 처음에 결정하고 움직였다. 오인에 의한 확신으로 결론을 내리고 일을 저지르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면 “가면서” 결정하게 된다. 이 대사는 생각을 깊게 한다는 뜻이고, 또 다른 오인을 방지하겠다는 것이고, (윌러비가 딕슨에게 남겼던 말처럼) 침착함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 길을 가면서 더 많은 생각과 경험을 통해 좀더 올바른 방향을 찾게 된다. 섣부른 판단이 아니라, 신중한 생각이 우리를 구원한다.

[사진 제공 = 20세기폭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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