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은의 안테나] "사과가 칭찬 받는 세상"…'미투 폭로'에 대리용서는 그만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사과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사과하는데 칭찬 받는 세상이 너무 슬프다."

'미투 운동' 활성화 이후 분야를 막론하고 유명 인사들의 지저분한 이면이 낱낱이 까발려지고 있다. 그러나 '인정', '사과', '반성'이라는 수습의 말들 속에서, 피해자의 상처는 고립 아닌 고립 속에서 더욱 깊어지고 있지 않나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배우 한재영 사례가 대표적이다. 연극배우 박 모 씨가 지난 4일 한재영의 과거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곧바로 한재영 측은 박 씨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먼저 사과의 말을 전했고 다음날 공식입장을 통해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사죄했다.

이에 박 씨는 한재영의 공식입장이 발표되기 전 추가 글을 게재했다. 그는 "한재영 배우에게는 직접 사과 받았다"며 "한 시간 넘게 통화하며 함께 울었고 미안하다고 얘기했다"고 했다. "이젠 한재영 배우에 대한 일은 털고 웃으면서 살고 싶고 한재영 배우가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을 봐도 이젠 아플 것 같지 않다"고 용서했음을 밝혔다.

하지만 사태를 바라보던 대중의 시선이 일부 미묘하게 달라지며,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상처를 안기고 말았다.

한재영의 행위를 비판하던 대중 중 몇몇이 그의 사과를 특별한 것처럼 치켜세운 탓이다. 한재영이 '미투 운동' 여타 가해자들과 달리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해 죄를 뉘우친 점, 부인하지 않고 곧바로 응답한 점, 피해자가 용서한 점 등을 결부시켜 그의 사과를 마치 '용기 있는 선택'이라거나 '사회적 선처'가 있어야 한다는 둥 평가한 것이다.

결국 가해자의 응당한 '사과'를 칭찬하는 목소리는 칼날이 돼 피해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5일 한재영의 공식 사과문을 접한 피해자 박 씨는 한재영의 '인정 없는 사과문'을 비판하며 "사과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사과하는데 칭찬받는 세상이 너무 슬프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앞서 성추문으로 사과한 배우 오달수에게도 일각에선 동정 여론이 나왔다. 드라마, 영화 하차가 줄을 잇자 사과까지 했는데 '가혹하다'는 옹호였다. 성추문의 주인공들은 결코 해선 안 될 일을 자행한 뒤, 뒤늦게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수행했을 뿐이다.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폭로가 없었더라면, 상처는 여전히, 오롯이, 피해자들만의 몫이 됐을 게다.

용서는 피해자만 가능하다. 피해자가 버젓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대중이 대신 용서할 자격은 없다. 제3자인 대중은 피해자가 받았을 상처를 감히 예단해서도 안 된다. 섣부른 제3자의 대리 용서는 가해자가 짊어져야 할 무게를 함부로 덜어내는 꼴이다. 피해자에게도 곧 2차 가해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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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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