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의 라스트신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리틀 포레스트’는 봄나물의 향긋함, 콩국수의 시원함, 밤조림의 달달함, 수제비의 쫀득한 맛이 배어있는 영화다. 임순례 감독은 각박한 현실에 지친 혜원(김태리)이 고향에 내려와 어릴적 어머니에게 배운 요리로 삶의 쉼표를 찍고 호흡을 가다듬는 과정을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잔잔하게 담아낸다. 정성껏 마련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고향 친구 재하(류준열), 은숙(진기주)과 우정을 나누며, 집을 떠난 엄마(문소리)를 기다리는 소소한 일상이 산뜻한 봄바람, 시원한 소나기, 따가운 가을볕, 차가운 겨울바람에 실려 스크린에 내려앉는다.

그렇다. 이 영화는 ‘기다림의 미학’을 가르쳐주는 자연의 섭리를 배음으로 깔고, 계절의 순환에 몸을 맡기는 삶의 여유를 밀거름 삼아 힘겨운 현실에서도 더 단단하게 성장하려는 청춘의 한 시절을 묵묵히 바라본다.

임순례 감독은 혜원의 뒷모습으로 시작해 앞모습으로 영화를 열고 닫는다. 서울을 떠나 쫓기듯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의 쓸쓸함은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호흡하며 행복감으로 변한다.

1996년 데뷔작 ‘세친구’의 라스트신과 비교하면 그의 영화는 22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점점 따뜻해졌다. ‘세친구’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 진학에 실패한 무소속, 삼겹, 섬세는 침울과 비관 속에서 한국사회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채 방황한다. 영화는 그들의 뒷모습을 먼 발치에서 담아낸다.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의 마지막 장면도 우울과 비관의 정서가 녹아있다. 록을 향한 10대 고교생들의 꿈은 세월의 풍파에 깎이더니 결국 트로트로 귀결된다. ‘사랑 밖에 난 몰라’가 흐르는 가운데 카메라는 서서히 뒤로 빠지며 마무리된다.

라스트신에 본격적으로 변화가 시작된 영화는 ‘제보자’(2014)다. 이 영화에선 윤민철 PD(박해일)가 또 다른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밝은 표정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변한 것은 아닐테다. 거대한 벽은 하루 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임순례 감독은 그 벽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인물들의 삶에 좀더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혜원의 미소가 반가운 까닭이다.

[사진 제공 = 메가박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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