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남의 풋볼뷰] 왼쪽에서 출발한 산체스 데뷔전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넘버7’ 알렉시스 산체스(30)가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맨유는 4부리그 요빌 타운을 4-0으로 완파 하고 잉글리시 FA컵 16강에 진출했으며 최근의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모두가 궁금해하던 산체스의 포지션은 ‘왼쪽 날개’였다. 산체스의 다재다능함을 칭찬하던 주제 무리뉴는 산체스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위치에 그를 배치하며 기존 선수를 다른 위치로 이동시켰다.

폴 포그바가 휴식 차원에서 빠졌지만 무리뉴 감독은 최근 꾸준히 사용한 4-3-3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역삼각형 미드필더에는 백전노장 마이클 캐릭을 중심으로 신예 스콧 맥토미니와 안데르 에레라가 포진했다. 최전방 스리톱에는 왼쪽부터 산체스, 마커스 래쉬포드, 후안 마타가 자리했다.

기본적으로 4-3-3 형태를 띄었지만 오른쪽 미드필더 마타가 빌드업 과정에서 자주 중앙으로 들어오면서 산체스가 사이드로 넓게 포진한 변칙적인 4-4-2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찰나의 포지션이며, 전체적인 틀은 4-3-3을 유지했다.

무리뉴 감독은 경기 전 산체스의 포지션에 관한 질문에 “공격 포지션 모든 곳에서 그의 출전은 가능하다. 나는 산체스를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지켜봤다.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스트라이커든, 처진 공격수든 다른 시스템에서 플레이하는 걸 모두 봤다. 그는 다른 철학을 가진 감독의 지도를 받았지만 모든 팀에서 성공했다. 산체스는 한 선수 이상의 역할을 할 것이며 멀티가 가능하다”며 한 곳에 그를 가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향후 상대에 따라 산체스의 포지션을 다양하게 가져갈 것이라는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요빌 타운과의 데뷔전에서 산체스는 매우 익숙한 위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맨유에 빠르게 적응하라는 무리뉴의 배려이기도 했다. 산체스는 우디네스와 바르셀로나 그리고 아스널에서 모든 공격 포지션을 소화했지만 최근에는 왼쪽 사이드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 본인 스스로도 ‘왼쪽’에서 뛰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데뷔전에서 산체스는 현대적인 측면 윙포워드처럼 뛰었다. 사이드로 넓게 포진해 공을 잡은 뒤 중앙으로 드리블을 치거나 상대가 달라 붙으면 전방으로 감각적인 로빙 패스를 시도했다. 또한 윙어임에도 롱패스로 공격 방향을 바꾸는 등 경기 전체에 영향력을 과시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프리킥도 직접 처리하는 등 다양한 능력을 뽐냈다.

이는 숫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산체스는 72분을 뛰고도 에레라와 함께 가장 많은 볼 터치를 기록했다. 무려 97번 볼을 터치했는데, 캐릭(87회)보다 10회나 더 많은 것으로 전방에 포진한 공격수치곤 매우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산체스는 맨유 공격에 매우 깊숙이 관여했다. 이적 후 첫 경기를 치른 선수라고는 믿기 힘든 기록이다. 반대로 산체스에 대한 맨유 선수들의 신뢰가 얼마나 높은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날 맨유의 모든 공격은 산체스가 포진한 왼쪽으로 향했고 실제로 선제골과 두 번째 득점 모두 산체스의 발 끝에서 시작됐다.

흥미로운 건 무리뉴 감독이 마타를 빼고 스트라이커 루카루를 투입하면서 래쉬포드를 왼쪽에 두지 않고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며 산체스에게 계속해서 왼쪽 날개를 맡겼다는 점이다. 이는 산체스의 첫 번째 포지션이 ‘왼쪽’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 변화다. 실제로 무리뉴 감독은 산체스 대신 린가드를 내보낸 뒤에는 래쉬포드를 왼쪽으로 이동시켰다. 물론 마샬이 들어올 경우 산체스의 포지션이 유지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마샬이 오른쪽으로 갈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미드필더 운영도 주목해야 한다. 무리뉴는 4부리그 팀을 상대로 3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기용했다. 원정이긴 하지만 맨유가 객관적인 전력에서 약한 팀을 상대로 중원 숫자를 늘린 건 이례적이다. 이는 산체스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무리뉴의 조치로 보인다. 공격에 무게를 둔 산체스의 컴백이 늘릴 경우 미드필더가 이를 커버하느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동시에 포그바와 산체스의 공존을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으로도 해석된다. 포그바의 포지션 논쟁은 오랫동안 지속됐다. 최근 들어 무리뉴가 포메이션을 4-2-3-1에서 4-3-3으로 바꾸고 포그바를 3선에서 2선으로 끌어올려 이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왼쪽 윙어로 나설 산체스까지 합쳐질 경우 4-2-3-1 보다는 4-3-3이 더 어울린다.

물론 산체스가 계속해서 왼쪽에 자리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한 경기 만으로 산체스의 최적 포지션이 왼쪽이라고 단정짓긴 어렵기 때문이다. 무리뉴 감독이 밝혔듯이 산체스는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고 상대에 따라 팀의 공격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전술로 변화를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맨유에 보다 다양한 옵션을 제공할 것이다.

[사진 = TacticalPAD, AFPBBNEWS]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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