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에 가면 외인도 업그레이드, 어천와 케이스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우리은행에선 농구하기 편하지."

우리은행은 2012-2013시즌 외국선수제도 재도입 이후 대박을 친 사례가 많지 않다. 티나 톰슨, 쉐키나 스트릭렌, 모니크 커리, 존쿠엘 존스 정도가 지명도가 높거나 성공작이었다. 대부분 선수의 객관적 능력은 중간 레벨이었다. 올 시즌 나탈리 어천와, 데스트니 윌리엄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은행에서 객관적 기량이나 개인기록이 향상된 외국선수가 적지 않았다. 과거 세 시즌 동안 뛴 사샤 굿렛이 대표적이다. 따지고 보면 지난 시즌에 뛴 존스도 우리은행에서 정통 빅맨으로 업드레이드, 특급 외인이 됐던 케이스다.

기본적으로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 박성배 코치의 지도력이 빼어나다. 우리은행 왕조의 시작부터 함께했다. 위 감독과 전 코치는 신한은행 코치 시절까지 더하면 엄청난 세월을 WKBL에 몸 담았다. 박 코치도 여고 지도경력이 풍부하다.

그만큼 여자농구의 특성을 잘 알고, 디테일한 맞춤형 훈련에 능하다. 예를 들어 어천와는 "박성배 코치와 함께 슛 연습을 많이 한다. 단순히 슛을 던지는 게 아니라 실전서 사용하는 동작을 집중적으로 연습한다"라고 말했다. 전주원 코치도 "올 시즌 어천와의 슛 폼을 약간 교정했다. 예전과 비교 할 때 큰 차이는 없다"라고 밝혔다. 미세한 변화다.

올 시즌 어천와는 16.3점(5위), 11.2리바운드(3위), 1.1블록슛(4위), WKBL 공헌도 690.30(3위)이다. 출전시간이 지난 시즌 평균 19분51초서 올 시즌 평균 29분48초로 약 10분 정도 늘어났고, 각종 기록도 향상됐다. 리그 최상위권이다.

가볍게 볼 부분은 아니다. 외국선수들이 우리은행에서 유독 기록, 기량이 향상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게 농구관계자들 지적이다. 대부분 관계자가 "임영희와 박혜진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예전에 흥미로운 얘기를 했다. 유 감독은 "보통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기량이 좋은 선수들과 함께 뛰면 확실히 좋아진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빈 곳으로 움직였다고 치자. 농구를 잘 하는 선수는 그 움직임을 읽고 정확한 타이밍에 패스를 넣어준다. 그걸 받아서 넣었다고 생각해봐라. 그 선수가 재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 나중에 또 그렇게 움직인다. 또 넣으면서 한 차원 높은 농구에 눈을 뜨게 된다"라고 말했다.

임영희와 박혜진은 올 시즌 전력이 약화된 우리은행을 선두로 이끈 주역들이다. 객관적으로 WKBL 국내 1~3번 중에서 이들과 1대1 매치업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 특히 박혜진은 무적이다. 신장 178cm는 그 자체로 어지간한 가드들을 상대로 미스매치 공격이 가능하다. 심지어 빠르다. 붙으면 드라이브 인, 떨어지면 슛이다. 패스능력 역시 점점 좋아지고 있다. 스크린을 빠져나가는 능력도 좋다.

우리은행 외국선수들은 박혜진과 임영희에게 철저히 도움을 받는다. 존스가 센터 역할에 무난히 적응한 것도 박혜진과 임영희가 정확한 타이밍에 공을 넣어줬기 때문이다. 외국선수는 두 사람에게 외곽에서 스크린만 제대로 하면 어떻게든 의미 있는 장면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박혜진과 임영희는 스크린 이후 상대 수비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미스매치 공격을 유발하거나 한 템포 빠른 패스로 또 다른 찬스를 만들어낸다. 상대가 외국선수 수비에 집중하면 돌파나 외곽슛 등 1대1 공격으로 처리한다. 타 구단 한 관계자는 "그래서 박혜진, 임영희가 하는 2대2를 알고도 못 막는다. 다른 팀들은 40분 내내 우리은행 2대2를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런 환경서 우리은행 외국선수들은 편하게 농구를 할 수밖에 없다. 유 감독 지적대로 약속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농구에 대한 재미를 느끼고, 능률을 끌어올리며,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타 구단 한 코치는 "지금 여자농구서 주전이라는 대부분 선수가 찬스가 언제인지도 모르고 움직인다. 찬스에 슛을 던져줘야 다른 선수들이 리바운드도 들어가고 수비도 준비한다. 우리은행은 그런 게 잘 돼있다"라고 말했다.

즉, 우리은행 외국선수들은 철저히 짜인 특유의 틀 속에서 박혜진과 임영희의 도움을 받아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경기를 펼친다. 어천와 역시 그렇다. KEB하나은행 시절에도 중거리슛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은행서 더욱 자신 있게 던진다. 박혜진과 임영희 덕분에 스크린 이후 혹은 약속된 패턴에 의해 확실한 찬스를 많이 잡기 때문이다.

농구를 알고 하는 국내선수들의 적극적인 도움과 출전시간이 늘어나면서 심리적 안정감이 생긴 측면은 무시할 수 없다. 어천와의 기량 자체가 눈에 띄게 좋아진 건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위성우 감독도 인정했고, 지난 시즌에 함께했던 하나은행 이환우 감독도 같은 견해다.

어쨌든 우리은행 어천와가 하나은행 어천와보다 임팩트 있는 건 사실이다. 유 감독 말대로 우리은행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쌓다 보면 나중에 기량이 더 좋아질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드웨어에 비해 소프트웨어가 좋다. 이해력이 뛰어나다. 박성배 코치는 "몸을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안다"라고 말했다. 전주원 코치도 "하드웨어가 달려도 기본기는 좋다. 존스가 몸으로 농구를 했다면 어천와는 머리로 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어천와는 "위성우 감독은 선수의 장점을 살릴 줄 아는 지도자다. 때로는 피곤할 때도 있는데, 따라가다 보면 잘 된다. 많이 뛰면서 체력도 좋아졌고, 뛰는 농구가 되기 시작했다. 훈련을 많이 하는데 지면 그만큼 속상하다"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특유의 강인한 마인드가 어천와에게 이식됐다. 어천와의 업그레이드는 올 시즌 우리은행 농구를 보는 또 하나의 포인트다.

[어천와.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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