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스테이션7’, 우주비행사가 축구경기를 궁금해하는 이유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 ‘스테이션7’은 1985년 통제불능에 빠진 우주정거장 살류트7호를 수리한 우주비행사 블라디미르 자니베코프(블라디미르 브도비첸코프)와 엔지니어 빅토스 사비뉴(파벨 데레비앙코)의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초속 8km로 비행하는 우주정거장에 수동으로 도킹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상에서 실시한 시뮬레이션은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수동 도킹으로 살류트7호를 구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실패하면 살류트7호는 지구에 추락해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자니베코프와 사비뉴는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는 임무수행을 위해 우주로 떠났다.

기적적인 도킹 성공으로 한 시름을 놨다 싶었지만 살류트7호 내부는 얼어 있었고, 급기야 화재까지 발생했다. 갈수록 산소는 부족해지고, 이들의 생명조차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닥칠 때, 보통 사람들은 동물적 생존본능에 따른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 집중한다.

자니베코프는 구 러시아 우주국의 직원에게 CSKA 모스크바 경기결과를 묻는다. 그 직원은 어쩌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왜 축구경기 결과를 물어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CSKA 모스크바가 2-1로 이겼다는 소식을 알려주자, 자니베코프는 입가에 미소를 띤다. 그에게 축구경기는 스포츠에서 늘상 일어나는 승패의 게임이 아니라, 삶의 존재 이유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가치다. 그는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겼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극한상황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생명 안에 내재돼있는 긍정의 힘이 작용한 결과다. 유대인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아우슈비츠에서도 티타임이 있었다. 하루에 한 번씩 차가 배급됐다. 수용소 사람들은 둘로 나뉘었다. 대부분은 단숨에 차를 마셨다. 일부는 차를 반만 마시고 나머지 반으로 얼굴과 손발을 씻었다. 차를 마신 사람의 눈에는 어차피 죽을텐데 뭐하러 절반을 남겨 몸을 씻을까라는 의문을 품었을테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많이 생존했을까. 후자가 더 오래 살았다. 그들은 나치가 자행하는 죽음의 협박 속에서도 인간적인 몸가짐을 잃지 않았다. 내일 독가스실에 끌려가더라도 오늘 인간으로서 해야할 일을 다하는 것, 동물적 본능에 따르지 않고 인간적 본능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목숨을 살렸다.

우주비행사가 축구경기 결과를 궁금해하고, 유대인이 몸을 씻은 것은 언뜻보면 사소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사소한 행위가 삶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 희망은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는 일상생활에서 숨을 쉰다.

[사진 제공 = 영화사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