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던 김신욱을 살린 신태용 감독의 한 마디

[마이데일리 = 일본 도쿄 안경남 기자] “신태용 감독님이 대표팀에서 죽어가던 날 살렸다” 한일전 4-1 대역전극을 연출한 ‘진격의 거인’ 김신욱이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한 말이다. 신태용 감독의 어떤 말이 대표팀에서 존재감을 잃어가던 그를 다시 하늘 위로 날게 했을까.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6일 일본 도쿄의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의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3차전에서 선제골을 허용하고도 4골을 몰아치며 4-1 역전승을 거뒀다. 이로써 중국(2-2무), 북한(1-0승)에 이어 개최국 일본마저 격파한 한국은 2승1무(승점7)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김신욱의 날이었다. 중국전에 이어 최전방 공격수로 낙점된 김신욱은 울산 시절 영혼의 파트너였던 ‘베테랑 공격수’ 이근호(강원)와 투톱으로 출격했다. 그리고 김신욱은 혼자서 2골을 터트리며 ‘도쿄 대첩’의 일등공신이 됐다.

196cm로 아시아에서는 압도적인 신체조건을 자랑하는 김신욱은 아지노모토의 하늘을 지배했다. 공중을 향한 공은 어김없이 그의 머리나 가슴에 떨어졌고, 이는 곧바로 한국의 공격으로 이어졌다.

경기 후 적장인 바히드 할릴호지치 일본 감독은 “김신욱은 굉장히 힘이 있는 선수다. 그가 공중전에 강한 선수라는 걸 여러 번 강조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어떤 시도도 통하지 않았다”며 김신욱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한일전에서 멀티골을 넣은 건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당시 2-0 승리를 이끈 최용수 전 서울 감독 이후 무려 20년 만이다. 그만큼, 김신욱이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보여준 활약은 강렬했다.

그렇다면, 대표팀에서 계륵과도 같았던 그가 누구보다 환하게 빛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김신욱에게 들을 수 있었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그는 “솔직히 지난 월드컵 이후 4년 동안 선발로 뛰지 못 한 게 가장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 신태용 감독님은 비디오 미팅 때 나의 장점이 발이라고 강조하며 자신감을 심어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그 동안 대표팀에서 답답했던 점은 항상 경기에 지고 있을 때 들어왔던 것이다. 그때마다 나의 역할을 공중으로 날아오는 단조로운 헤딩을 머리로 떨구는 것 뿐이었다”며 대표팀에서 자신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랬던 김신욱을 바꾼 건, 끝임 없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신태용 감독의 한 마디였다. 김신욱은 “그러나 신태용 감독님은 대표팀에서 죽어가던 날 살렸다. 미팅 때마다 정말 기를 많이 살려 주셨다. 똑같이 압박하고 발 밑으로 오는 플레이가 장점이라고 강조하셨다. 또 크로스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따로 미팅을 갖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김신욱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선수다. 그는 자주 “저는 특화된 선수다. 동료들과 함께하지 못하면 나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장점을 알아주고 계속해서 용기를 심어준 신태용 감독의 신뢰는 중요했다. 그의 말 한 마디가 김신욱을 대표팀에서 깨어나게 했기 때문이다.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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