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우의 2017년, 두산보다 높은 산을 넘었다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부담이 컸다. 그렇다고 표현할 수도 없었다."

KIA는 작년 스토브리그서 최형우와 FA 100억원 계약을 체결했다. 역대 최초의 100원대 FA 계약. 롯데가 이대호를 4년 150억원에 영입하면서 역대 FA 최고몸값을 갈아치웠다. 그렇다고 해도 최형우에 대한 KIA의 엄청난 기대감이 희석된 건 아니었다.

최형우는 지난달 30일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KIA에 우승하러 온 건 맞다. 하지만, 부담도 컸다.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표현할 수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삼성을 떠나 KIA 유니폼을 입은 순간, 최형우에겐 KIA로부터 우승청부사로 거듭나달라는 주문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최형우는 정규시즌 개막전부터 매일 상대 팀, 상대 투수만큼이나 버거운 또 다른 상대와 싸웠다. 자기자신이다. 100억원짜리 계약으로 자신에게 믿음을 보여준 KIA에 반드시 우승을 안겨야 한다는 부담감. 프로의 숙명이지만, 그래도 최형우의 어깨는 남들보다 좀 더 무거웠다.

올 시즌 142경기서 타율 0.342, 26홈런 120타점 98득점. 충분히 이름값을 했다. 최형우 없이 올 시즌 KIA 타선의 폭발력을 논할 수 없다. 막강 KIA 타선구축의 시작점은 최형우의 4번 타순 안착이었다.

한국시리즈서 타율 0.235 1타점 2득점으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공헌이 없는 건 아니었다. 2차전 김주찬의 결승득점 과정에서 3루와 홈 사이에서 런다운에 걸렸을 때 최형우가 3루까지 파고들지 않았다면 두산 내야진과 양의지에게 혼란을 줄 수 없었다.

최형우도 "주찬이 형 기사만 계속 나왔는데, 내가 3루에 들어가면서 슬쩍 몸을 돌리지 않았다면 주찬이 형도 아웃됐을 것"이라고 웃었다. 실제 두산이 양의지의 3루 송구 이후 최형우를 태그하는 과정에서 최형우가 몸을 돌리는 바람에 약간의 시간이 지체됐다. 김주찬이 홈으로 파고드는 시간을 번 건 사실이었다.

김선빈은 "허리가 아파서 우승 세리머니를 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하지만, 우승을 향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는 게 그 주루 하나로 증명됐다. 최형우는 "야구라는 게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지만, 이 팀에 오자마자 마음 먹은대로 됐다. 내게도 의미가 큰 우승"이라고 말했다.

한국시리즈서 두산이 KIA에 우세할 것이라는 주변의 전망도 뒤엎고 싶었다. 최형우는 "결국 우리가 두산보다 강한 걸 증명했다. 많은 사람의 생각을 뒤집었다. 정말 다 같이 뭉쳤다. 두산의 큰 경기 경험보다 KIA의 간절함이 앞섰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최형우는 두산보다 더 높은 산, 자신(부담감과의 싸움)을 넘었다. 나아가 주변의 평가도 뒤집으며 KIA 전성기를 창조했다. 그리고 KIA의 매력에 푹 빠졌다. 최형우는 "우승을 할 수도 있는 날에는 세리머니도 미리 계획하는데, 정말 어제(29일 4차전 승리 직후)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우리 선수들이 우승을 해보지 않아서 그런 걸 모르더라. 정말 순박한 친구들이다"라고 웃었다.

[최형우.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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