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남의 풋볼뷰] 다닐루는 어떻게 108패스를 했나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전술가’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기존 선수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능력이 있다. 바르셀로나에선 윙 포워드로 뛰던 리오넬 메시를 ‘가짜 9번(false nine: 최전방 공격수를 두지 않은 제로톱 전술에 기용되는 공격수로, 포지션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전방과 2선을 넘나든다)’에 세워 축구 전술 역사를 새로 썼고, 바이에른 뮌헨에선 풀백이었던 필립 람과 다비드 알라바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파격적인 전술을 선보였다.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펩의 도전적인 전술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시즌 노쇠한 풀백 자원으로 인해 자신의 축구 철학을 펼치지 못했던 그는 올 여름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들여 베르나르드 실바, 에데르손, 카일 워커, 벤자민 멘디를 영입하며 3-1-4-2 포메이션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펩은 전 영역에 걸쳐 새로운 롤을 부여했다. ①원톱에 익숙한 세르히오 아구에로 옆에 가브리엘 제수스를 세워 경쟁이 아닌 상생을 도모했고, ②공격형 미드필더와 윙어로 뛰었던 케빈 데 브라위너와 다비드 실바를 나란히 배치해 더블 플레이메이킹을 가능하게 했다. ③그리고 워커와 멘디를 기존의 윙백보다 더 높이 전진시켰다.

변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센터백 빈센트 콤파니의 부상으로 스리백(back three: 3인수비) 라인에 공백에 발생하자 레알 마드리드에서 영입한 측면 수비수 다닐루를 스토퍼로 기용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다닐루가 좌우 풀백으로 뛴 경험은 있지만 중앙 수비수로 기용된 적은 없다. 게다가 펩은 리버풀이 퇴장으로 10명이 되자 후반에 다닐루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진시키며 또 한 번 변화를 감행했다. 그리고 다닐루는 무려 108개의 패스를 성공했다.

#포메이션

펩 감독은 두 명의 공격수와 세 명의 수비수를 구축했다. 아구에로와 제수스가 투톱을 이뤘고 워커와 멘디가 좌우 윙백으로 나왔다. 콤파니가 부상으로 빠진 스리백에선 엘리아큄 망갈라 대신 측면 수비수인 다닐루를 존 스톤스, 니콜라스 오타멘디와 함께 세웠다.

위르겐 클롭 감독은 4-3-3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로베르토 피르미누, 사디오 마네, 모하메드 살라가 전방에 포진했고 알렉산더 아놀드가 오른쪽 수비수로 선발 출전했다.

#투톱 vs 투센터백

보통 투톱을 상대할 때는 수적으로 한 명이 더 많은 스리백이 효과적이다. 상대 공격수와 1대1 상황이 되길 원하는 수비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아구에로, 제주스처럼 빠른 발과 개인 기술을 갖춘 공격수와 마주할 때는 한 명이 경합하고, 다른 한 명이 공간을 커버해야 한다. 하지만 포백을 쓴 리버풀은 맨시티 투톱의 침투에 어려움을 겪었다. 전반 24분 선제골 장면에서 데 브라위너의 패스가 워낙 날카롭기도 했지만 리버풀 수비수 클라반 입장에선 순간적으로 자신의 뒤에 있는 제수스와 앞에 있는 아구에로 사이에서 방황할 수 밖에 없었다.

클롭 감독은 마네의 퇴장으로 10명이 된 후반에 엠레 찬을 후방으로 내려 스리백으로 변화를 줬다. 맨시티 투톱의 침투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는 찬의 이동으로 미드필더 숫자 역시 부족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펩 역시 스리백에 있던 다닐루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진시켰고 중원에서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한 맨시티는 더 쉽게 리버풀 박스 안으로 파고들었다.

#퇴장

마네가 퇴장 당하기 전까지 리버풀은 속도를 앞세워 맨시티의 수비 뒷공간을 공략했다. 살라가 결정력을 살렸다면 경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네는 에데르손 골키퍼와 충돌 후 퇴장을 당했고, 공격 옵션을 잃은 리버풀은 힘을 잃었다.

#다닐루

결과적으로 다닐루의 변신 대성공이었다. 그는 115개의 패스를 시도해 108개를 성공했다. 패스 성공률이 93.9%인데, 이번 라운드에서 가장 많은 패스를 성공한 선수가 바로 다닐루였다. 펩이 바이에른에서 람을 미드필더로 변신시킨 것을 상기하면 다닐루의 수비형 미드필더 변신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닐루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어떤 선수였는지 기억한다면 완전히 새로운 발견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스리백 위치에서 다닐루는 마네를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했다. 마네를 압박하기 위해 자주 전진했지만 타이밍이 늦거나 오프사이드 트랩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펩이 망갈라 대신 다닐루를 선택한 건 그가 높은 패스 성공률을 보였기 때문이다. 볼의 소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펩에게 다닐루는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줬다.

#벤자민 멘디

프랑스에서 건너 온 멘디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왼쪽 윙백으로 출전한 멘디는 리버풀 수비수 아놀드를 딜레마에 빠지게 만들었다. 크로스가 위협적인 멘디는 수비수가 접근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낙차 큰 얼리 크로스로 전방 투톱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아놀드에게 골칫거리였다. 멘디의 크로스를 막기 위해 전진하면 센터백(마팁)과의 거리가 멀어져 데 브라위너 혹은 실바에게 공간을 허용했다. 하지만 반대로 거리를 두며 크로스 타이밍을 뺏지 못해 중앙에서 위기를 초래했다.

#총평

원하는 선수를 손에 넣은 펩 감독은 시즌 초반부터 자신이 구상한 전술을 마음껏 그리고 있다. 그는 선수의 장점을 더 부각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안했으며 수비가 약한 풀백으로 평가 받던 다닐루를 스리백의 스토퍼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며 새로운 잠재력을 끌어내고 있다. 물론 한 경기 만으로, 그것도 10명이 된 리버풀과의 경기만 보고 펩의 전술적인 실험이 성공했다고 단정짓긴 어렵다. 그러나 늘 그랬듯 이번에도 그의 시도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사진 = AFPBBNEWS, TacticalPAD]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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