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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고의 140일, 힘겨웠던 kt 로치 14연패 탈출기 [이후광의 챌린지]
17-09-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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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후광 기자] 단군설화에 나오는 곰 한 마리는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빌었다. 때마침 환웅이 쑥과 마늘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했고, 곰은 굴 속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낸 끝에 단 21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됐다.

kt 위즈 우완 외국인투수 돈 로치에게도 인고의 시간이 있었다. 출발은 좋았다. 묵직한 투심패스트볼과 탁월한 땅볼유도능력에 힘입어 개막전 선발투수로 낙점 받았고, 3월 31일 인천 SK전서 6이닝 2실점으로 승리를 챙겼다. 강렬한 데뷔전이었다. 호투를 이어가다 4월 19일 KIA전에선 7이닝 1실점 역투로 또 승리투수가 됐다. 그 때만 해도 로치가 KBO리그에 연착륙한 줄 알았다.

그러나 이는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후 140일-19경기 동안 로치 커리어에 승리는 없었다. 그 기간 경기당 평균 5이닝 이상을 소화, 5차례 퀄리티스타트에 성공했지만 번번이 고개를 숙였다. 로치만 나오면 야수들이 혼란을 겪었고, 그 결과 실점과 자책점의 차이가 14점에 달했다. 타선 지원 역시 저조했다. 본인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나머지 무리를 하다 팔꿈치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인고의 시간이었다.


▲140일만의 3승,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

쑥과 마늘을 먹고 곰이 웅녀가 됐듯이 로치도 긴 시간 끝에 마침내 승리를 맛봤다. 지난 6일 수원 넥센전에서 7이닝 2실점 호투로 무려 140일 만에 3승을 챙긴 것. 로치는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굉장히 좋았다. 오랜만에 이겨서 의미도 있었고, 승리하는 기분을 까먹을 뻔 했는데 다시 되돌아온 것도 기뻤다”라고 밝게 웃었다. 야구하면서 이렇게 승운이 따르지 않은 적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영어로 ‘NO’를 3번 반복하며 “완전 처음이다”라고 답했다.

물론 이날도 승리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로치는 3-2로 근소하게 앞선 8회초 심재민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심재민이 8회를 삼자범퇴로 막았고, 8회말에는 박경수-이해창이 팀의 시즌 첫 백투백홈런을 완성시켰다. 승리에 목말라 있던 로치는 당시 더그아웃에서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동료들의 홈런에 기분이 좋았고, 격차가 벌어져 마음도 편안해졌다. 팀원들이 내 승리를 위해 간절하게 플레이하는 게 느껴져 그것도 기뻤다”라는 게 만세를 외친 이유.

그러나 기쁨도 잠시 9회 올라온 이상화가 선두타자 채태인의 안타에 이어 마이클 초이스에게 추격의 투런포를 맞았다. 다시 1점으로 좁혀진 격차. 그래도 로치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별 생각은 안 했다. 내 역할을 했고, 팀이 승리할 수 있는 위치로 내가 갖다놨으니 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결국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올라가 기분이 좋았다”라고 당시의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단일 시즌 최다 연패 기록, 로치만 몰랐다?

길어진 연패 탓에 로치는 이미 KBO리그 불명예 기록 하나를 경신했다. 8월 12일 인천 SK전 패배로 12연패를 당해 KBO리그서 역대 최다 연패를 당한 외국인투수에 이름을 올린 것. 종전 기록은 2010년 한화 호세 카페얀의 11연패였다. 이후 6일 넥센전에서 패할 시 1986년 장명부(빙그레)가 기록한 단일 시즌 최다 연패 타이 기록(15연패)에도 도달할 수 있었다.

일단 로치는 해당 기록을 모르고 경기에 나섰다고 한다. 로치는 “느낌으로는 뭔가 이 리그의 최다 연패에 가까워진 것 같은데 정확한 숫자는 몰랐다”라고 웃으며 “등판을 마치고 더그아웃에 앉아있을 때 피어밴드가 다가와 말해줬다”라고 전했다.

이미 기사를 통해 로치의 최다 연패 기록 도달 가능성이 수차례 언급됐지만 외인들은 국내 기사를 접하기 어렵다. 다만, 피어밴드는 평소 한국어로 검색을 해 개인 및 팀의 기사를 살펴보는 외인으로 유명하다. 피어밴드는 이 사실을 미리 인지했지만 로치의 투구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경기 후 언급하는 배려를 발휘했다.


▲로치가 전한 인고의 시간

140일 동안 로치는 어떤 생각으로 마운드에 올랐을까. 로치를 버티게 한 건 긍정의 힘이었다. 그는 “자존감이 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극복했다. 사람으로서, 또 투수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라며 “최선을 다해도 경기 결과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그저 난 나갈 때마다 팀이 승리하는 위치로 갈 수 있게 항상 노력할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잦은 실책을 범하는 야수들이 야속할 법도 했지만 로치는 “야구의 일부분이다. 선수들이 실책을 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사정도 이해한다”라고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다만 “그래도 사람이라 화도 나고 스트레스도 받았다. 내가 왜 그런 상황에 처해야 하고, 난 열심히 했는데 항상 패만 당해야하는지 스트레스가 쌓였다”라고 솔직한 마음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래도 다시 오고 싶은 팀은 kt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로치는 내년에도 kt 유니폼을 입고 싶다고 강하게 어필했다. 이미 한 시즌을 통해 많은 팀 동료들과도 친해졌다. 호흡을 맞추는 이해창, 베테랑 내야수 박기혁과 가장 장난을 많이 치며 고영표, 엄상백 등 어린 선수들과도 이미 돈독한 관계를 만들었다. 엄상백에게는 ‘세미-소닉’이라는 별명도 지어줬다. “엄상백은 ‘슈퍼-소닉’ 이대형과 똑같이 잘생겼는데 더 어리다. 그러니 ‘세미 소닉’이다”라는 게 별명 탄생의 배경.

한국 문화 및 음식에도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 로치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돼지갈비와 불고기. 또한 경기장에서 치어리더와 관중들이 타자마다 응원가를 부르는 장면도 신기하고 새로웠다고 전했다.


불운의 한 시즌이었지만 로치는 “그래도 굉장히 즐거웠다. 선수단이 항상 긍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했고, 그 속에서 재미를 느꼈다”라며 “한국 야구 또한 배울 점이 많았다. 많은 경험을 했고, 선수로서도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KBO리그를 통해 내가 한 단계 성숙해진 느낌이다”라고 긍정적인 요소를 짚었다.

로치는 끝으로 “내년에도 kt에 너무나 다시 오고 싶다. 다시 와서 지금 선수들이랑 다시 좋은 팀을 만들어 보고 싶다. 한국생활 역시 만족스럽다”라고 kt와 또다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

[돈 로치. 사진 = 마이데일리 DB]
이후광 기자 backligh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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