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호 아시아컵 순항, 만수의 조언이 있었다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오랫동안 대화했다."

대부분 한국농구 지도자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자신만의 소신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다. 지도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덕목이다. 종목을 불문하고 소신과 철학 없이 지도자로 롱런하는 건 불가능하다.

때로는 이 부분이 한국농구 발전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일부 지도자들은 주변의 조언이나 직언에 귀를 닫는다. 현대농구의 트렌드를 반영하지도 않는다. 끝까지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다 실패를 맛본다.

당연히 선수와 팀이 피해를 본다. 유망주들이나 프로 저연차들의 저조한 성장, 멤버구성 대비 성적을 내지 못하거나 리빌딩이 지지부진한 팀들이 매 시즌 나타난다. 이런 부분들이 쌓여 한국농구 국제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최근 FIBA 남자 아시아컵서 한국 남자농구대표팀을 이끄는 허재 감독의 행보는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KCC 시절은 물론, 과거 대표팀 사령탑 시절 스타일과도 차이가 있다. 선 굵은 스타일에 세밀함을 더한 느낌.

최근 허재호가 선보이는 2대2, 3대3 공격전술, 최준용을 탑에 세운 3-2 드롭존, 스위치디펜스 등은 작년부터 서서히 다져온 결과물이다. 이번 대회서 허재호의 공수 옵션은 다양하다. 다른 나라들은 허재호의 다양한 무기에 대비하는 게 쉽지 않다.

전임감독제의 장점이 충분히 발휘된 대목이다. 허 감독은 2년째 대표팀을 관리, 지도하고 국제대회를 치르면서 대표팀이 나아갈 방향을 잡았다. 그 결과 허재호는 이번 대회서 예상을 뒤엎고 뉴질랜드, 일본, 필리핀 등 까다로운 국가들을 연파하고 준결승까지 올랐다. 결과 이상으로 내용이 좋다.

그런데 반드시 짚어야 할 부분이 또 있다. 현재 대한민국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모비스 유재학 감독의 존재감이다. 유 감독은 올해부터 각급 대표팀 선발 및 관리를 수행하는 기술위원, 이사들의 리더 역할을 한다.

이제까지 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 및 위원장의 존재감은 거의 없었다. 주관, 철학이 뚜렷한 프로 감독들이 남녀 성인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뒤에는 더더욱 그랬다. 경기력향상위원회가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감독이 어떤 선택을 잘못하면 제동을 걸고, 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한다. 그동안 경기력향상위원회는 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유재학 감독은 달랐다. 허 감독은 지난달 원주에서 동부와 합동훈련을 할 때 "재학이 형이랑 4시간 동안 점심도 못 먹고 선수선발로 토론했다. 나중에는 배가 고프더라고"라고 웃었다. 그동안 한국농구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건전한 토론이었다.

유 감독은 2010년대에 남자대표팀 사령탑을 가장 오래 맡았다. 이번에는 경기력향상위원장 직함에 걸맞은 역할을 했다. 허 감독도 귀를 열고 농구선배 유 감독의 조언 및 직언의 일부를 수용했다. 최근 유 감독은 "선수선발 할 때 이것저것 얘기를 많이 해줬다. 허 감독과 꽤 오랫동안 대화했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유 감독은 "(허)웅이를 대표팀에서 빼자고 했다. 웅이까지 들어가니 가드진 신장이 너무 낮아진다. 아시아컵서 가드진 신장이 그 정도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웅이가 좋은 선수지만, 아직 자신만의 확실한 무기는 없다. 그리고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양홍석은 꼭 데려가라고 했다"라고 털어놨다.

결과적으로 허 감독은 허웅 대신 윌리엄존스컵서 좋지 않았던 허훈을 아시아컵서 제외했다. 그리고 장신가드 박찬희를 중용했다. 최준용도 가드로 활용, 3-2 드롭존에 특화시켰다. 양홍석도 안고 갔다. 허 감독이 자신의 구상에 유 감독의 조언을 적절히 받아들여 최상의 결과를 낸 셈이다. 유 감독은 "일본전을 보니 허 감독이 준비를 많이 했더라"고 말했다.

아직 아시아컵은 끝나지 않았다. 어차피 허 감독의 진정한 평가무대는 11월 23일부터 시작하는 2019 FIBA 중국월드컵 1~2차 홈&어웨이 예선이다. 그래도 대표팀 사령탑과 경기력향상위원장의 건전한 토론과 조언은 의미가 있다.

허 감독과 유 감독이 좋은 선례를 남겼다. 일부 한국농구 지도자들은 소신도 좋지만, 고집을 부리면 안 된다. 그렇게 흘려버린 세월이 너무 아깝다. 이제부터라도 농구인들의 시너지가 필요하다. 정체된 한국농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허재호. 사진 = 대한민국농구협회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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