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록의 나침반] '군주' 유승호X김소현X엘, 부실한 극본에도 연기는 빛났다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배우 유승호와 김소현 그리고 보이그룹 인피니트 멤버 엘이 한 단계 도약한 작품이다.

MBC 월화 사극 '군주-가면의 주인'(극본 박혜진 정해리 연출 노도철 박원국)이 13일 40부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극본은 부실했으나, 연기는 탄탄했다.

세자 이선 역 유승호는 앳된 이미지를 말끔히 벗어버린 것을 넘어 강인한 남성미를 끄집어내 대중에 성공적으로 각인시켰다. 세자가 비극적인 사건을 잇따라 겪으며 자각하는 순간의 유승호는 15년 전 영화 '집으로'의 철부지 꼬마에게선 전혀 상상하지 못한 눈빛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차근히 쌓은 연기력은 이미 수 차례 검증 받은 터라 재평가는 무의미했다. 다만 그가 2004년 KBS 2TV '부모님 전상서'에서 부자 사이로 만난 배우 허준호와 어느덧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는 관계로 재회해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유승호가 얼마나 배우로서 올바르게 성장하고 있는지 절감하게 했다.

전역 후 잇따라 선보인 영화 '조선마술사', '봉이 김선달' 등의 사극 영화가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음에도, 재차 사극인 '군주'에 도전해 결과를 만회했다는 점에서도 유승호에게는 의미가 컸다.

김소현의 성장은 무서울 정도다. 엄청난 속도로 다양한 작품과 캐릭터를 흡수하고 있다.

비록 일부에선 '연기 패턴이 비슷하다'고 비판하지만, 이는 착시(錯視)에 가깝다. 김소현이 같은 연기를 반복한다기보다, 워낙 여러 작품 쉬지 않고 대중과 만나다 보니 도리어 우리가 김소현의 모든 연기에 익숙해진 탓이 크다.

특히 김소현의 장점은 시선을 끌려고 캐릭터를 과장하지 않는 데 있다는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당장 화려하게 도드라지진 않더라도, 물 흐르듯 매끄럽게 어떤 역할이든 제 역할을 해내는 욕심 없는 연기가 특기다. 지금의 거침없는 캐릭터 소화력은 김소현을 훗날 '천의 얼굴'을 지닌 배우로 자라게 하는 자양분이 될 게 분명하다.

엘은 연기자로서의 잠재력을 '군주'로 충분히 입증해냈다.

당초 대중뿐 아니라 MBC 내부에서도 캐스팅에 이견이 있었을 만큼 연기자로는 아직 확신을 주지 못한 엘이었다.

하지만 첫 등장부터 천민의 얼굴을 천연스럽게 쓰고 나타나 스스로의 다짐처럼 가수로서 보여온 이미지를 잊게 했다.

중후반부 몇몇 장면에선 보완의 여지를 남겼어도, 엘의 이선이 천민의 얼굴로 시작해 두려움 가득한 가짜 왕, 욕망에 사로잡힌 왕까지 '군주' 속 캐릭터 중 가장 변화의 폭이 컸다는 것을 감안하면, 호연(好演)의 평가를 받을만했다. 아이돌 출신에, 첫 사극이라 대중의 평가가 더 날카로웠음에도 이를 수월히 극복해냈다는 것도 엘의 성과다.

극본은 연기에 못 미쳤다. 세자 이선(유승호)이 위기를 뛰어넘어 군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예상한 시청자들의 기대는 빗나갔다.

전개를 단순히 세자 이선과 천민 이선(엘)이 한가은(김소현)의 사랑을 두고 갈등하는 쪽으로만 흘려 보내며, 캐릭터의 균형은 무너졌고 결국 세 사람 모두 이해하기 힘든 인물들로 변모하고 말았다. 오히려 배우 윤소희가 극 안에서 성장시킨 김화군만이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인물로 시청자들에게 받아들여진 것도 중심 잃은 극본의 당연한 결과였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MBC 방송 화면]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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