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박열’, 가네코 후미코, 최희서 그리고 안톤 체호프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이준익 감독의 ‘박열’은 ‘동주’와 시(詩)로 연결됐다. ‘동주’의 마지막은 동주(강하늘)가 쿠미(최희서)에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의 시집 이름을 들려주는 장면으로 끝난다.

‘박열’에서 가네코 후미코(최희서)는 극 초반부 첫 등장하는 장면에서 박열(이제훈)의 시 ‘개새끼로소이다’를 낭송한다. 이준익 감독은 각각 ‘동주’의 마지막과 ‘박열’의 시작을 시로 이으면서 일제 식민지 시대 지식인들의 신산스러운 삶을 문학적으로 표현했다.

‘동주’가 식물성의 영화라면, ‘박열’은 동물성의 영화다. 동주는 내면으로 침잠했던 시인이었던 데 반해, 박열은 외면으로 폭발했던 아나키스트였다. 전자가 담담하다면, 후자는 부글부글 끓는다.

‘동주’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제목을 듣고 ‘박열’에서 ‘개새끼로소이다’를 낭송하는 최희서는 두 영화의 연결고리다.

실제 최희서는 열정적인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와 문학적 취향을 공유하고 있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과 함께 ‘대역죄인’의 죄목으로 일본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 ‘안톤 체호프 단편선’을 들고 있었다. 최희서가 꼽는 최고의 작품 역시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두 인물이 ‘문경’으로 연결됐다는 점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성적 학대를 받으며 자란 인물로, 천황제와 군국주의에 깊은 반감을 지닌 ‘자유여성’으로 성장했다. 조선에서 7년 동안 살면서 할머니의 학대까지 받은 그는 이 시절에 조선인의 독립의지를 확인하고 일본에 돌아가 박열과 연인이자 동지로 지내며 아나키스트의 삶을 살았다.

그가 감옥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을 때, 옛 동지들은 그의 유골을 박열의 친형에게 전했고, 무사히 경북 문경 팔령상에 묻었다.

최희서는 ‘박열’에 캐스팅된 뒤 가네코 후미코의 삶의 흔적을 찾기 위해 문경을 찾았다. 최희서의 본명은 ‘최문경’이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 ‘박열’, 시, 안톤 체호프, 그리고 문경은 가네코 후미코와 최희서의 운명적 인연을 보여준다.

그 배우가 아니라면, 아무도 소화해낼 수 없는 캐릭터가 존재한다. 유창한 일본어 실력을 갖춘 최희서는 천황제와 군국주의에 당차게 맞서며 온 몸을 불살랐던 가네코 후미코를 빼어나게 연기했다.

영화 ‘박열’이 아니었다면, 현재를 살고 있는 한국인은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을 몰랐을 것이다. 특히 최희서와 이제훈의 열연이 아니었다면, 일제에 맞서 용암처럼 뜨겁게 살았던 두 인물의 진심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박열’이 현 시대 청춘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워라!”

[사진 제공 = 메가박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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