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인터뷰②]‘박열’ 이준익, “‘놀이하는 인간’에 매력을 느낀다”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이준익 감독 작품의 중요한 테마는 ‘놀이’다. ‘황산벌’에선 사투리 놀이를 통해 지배자의 역사 서사를 해체시켰고, ‘왕의 남자’에선 광대 놀이를 통해 권력을 조롱하고 풍자했다. ‘라디오 스타’에선 공중파 라디오가 시도하지 못하는 ‘사연-놀이’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즐거운 인생’에선 ‘밴드-놀이’를 통해 중년 남성의 잃어버린 꿈을 보듬었다. ‘소원’의 아빠(설경구)는 ‘코코몽-놀이’를 통해 성폭력 당한 딸의 아픔을 치유한다.

‘박열’도 일제를 상대로 ‘놀이’를 즐긴다. 재판정에서 한복을 입고 참석한 것이 대표적이다. 일제의 한복판에서 일제의 허상을 폭로하는 것. 박열은 ‘놀이’로 일제 전복을 꿈꿨다.

“가네코 후미코의 평전을 읽으면서 간파했죠. 박열은 ‘놀이하는 인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은 ‘유희적 동물’이잖아요. 놀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요. 이 사람은 일제를 상대로 게임을 한 거예요. 중요한 것은 ‘일제의 룰’에 따라서 했다는 거죠. 일본 사법체계를 충실히 따르면서 조롱한 거예요. 감옥에선 간수, 그리고 예심판사와 게임을 벌였죠. 재판정에선 판사를 앞에두고 ‘대역죄’의 타이틀을 걸고 쟁탈전을 벌인 거예요.”

그는 사극과 시대극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황산벌’ ‘평양성’ ‘왕의 남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동주’에 이어 ‘박열’까지 그의 사극은 믿고 보는 작품이 됐다.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사극 세계를 구축했다.

“‘황산벌’ 찍을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극과 시대극을 찍을줄 몰랐죠. 전례가 없었잖아요. 신상옥 감독님은 너무 앞선 세대였고요. 지표 설정의 기준이 없었어요. 액션, 로맨스 등 장르영화엔 매력을 못 느껴요, 과거 이야기를 통해 새로움을 주다보니까 여기까지 온 거예요. 먹고 살려고 발버둥을 친 흔적이죠(웃음).”

그는 욕심을 내려봤다. 감독이 영화 10편을 찍으면 바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바닥을 탈탈 털었다. 오래전에 바닥이 났다고 고백했다. 이제는 배우와 스태프의 재능으로 찍는다. 그들과 협업을 통해 1년에 한 편 꼴로 영화를 만든다.

“제 영화엔 콘티가 없어요. 배우와 스태프의 힘으로 영화를 찍어요. 이게 아나키스트 방식이죠. 배우에겐 디력션을 안줘요. 배우들도 내가 디렉션 안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저는 교통경찰 기능만 수행하는 거예요. 가끔 딱지를 발부하기도 하죠(웃음).”

이준익 감독은 과거 씨네월드 시절에 ‘먼저 확실한 카피가 나오지 않는 영화는 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세웠다. 옛 이야기를 들려주자, “내가 그런 말도 했냐”며 머리를 긁적였다.

“카피를 냈는데, 마케터들에게 퇴짜 맞았어요. ‘제국도 막지 못한 사랑’. 젊은 친구들이 올드한 느낌이라며 안 쓰더라고요(웃음).”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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