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남의 풋볼뷰] '뢰브 실험' 포메이션이 희미해진다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펩 과르디올라와 전술 철학을 공유하는 요하임 뢰브 감독은 독일에 다양한 색채를 입히고 있다. 그는 포백(back four: 4인 수비)과 스리백(back three: 3인 수비)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원톱과 투톱, 심지어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의 경계마저 없앤다. 최근 러시아에서 진행되는 2017 국제축구연맹(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호주를 상대로 혼합형으로 불리는 ‘하이브리드 포메이션’을 가동해 시선을 모았다.

독일의 포메이션은 확실한 정의를 내리기 어려웠다. 현장 중계에선 무스타피와 뤼디거가 센터백을 구성하고 좌우 풀백에 킴미히와 헥토르가 서는 것으로 표기했지만, 경기가 진행될 수록 스리백에 가까운 형태를 띄었다. 이는 무스타피가 가운데로 오고 뤼디거가 왼쪽으로 넓게 포진했으며, 헥토르가 매우 높은 위치까지 전진했음을 의미했다.

그로인해 4-1-4-1로 시작한 포메이션은 3-3-2-2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또한 고정된 위치는 아니었다. 브란트가 윙어처럼 올라가고, 킴미히가 따라서 전진할 때는 2-2-4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독일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였고 호주는 이러한 플레이에 경기 초반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독일의 예측 불가능한 포지셔닝은 기존의 역할을 파괴한 배치 때문이다. 브린트는 레버쿠젠에서 주로 4-2-3-1의 윙포워드를 맡았다. 3-3-2-2에선 포지션상 윙백이었지만, 윙어에 가까웠던 이유다. 묀헨 글라드바흐에서 뛰는 스틴들도 마찬가지다. 와그너와 함께 투톱을 맡았지만 전형적인 스트라이커는 아니다. 그래서 전방과 후방을 자주 오르내렸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였던 선수는 킴미히였다. 보통 한 경기에서 두 가지 역할을 부여 받는 선수는 있어도, 세 가지를 소화하는 선수는 없다. 하지만 이날 킴미히는 무려 세 가지 역할을 수행했다. 경기 초반 포백일 때는 ‘풀백’이었고, 스리백에선 ‘스토퍼’였으며, 수비 라인이 후퇴할 때는 일시적으로 상대 공격형 미드필더를 압박하는 ‘홀딩맨’으로 변신했다.

이는 호주의 포메이션과도 관계가 있다. 안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3-4-2-1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독일과 같은 스리백이었지만 미드필더를 정사각형으로 배치한 것이 특징이었다. 앞선 ‘2’에 위치한 선수들이 ‘공격수’보다는 ‘미드필더’에 가까웠다는 얘기다.

이론상 호주의 정사각형(4명) 미드필더는 독일의 역삼각형(3명)과의 대결에서 수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러나 뢰브는 스틴틀이 후방으로 내려오고, 킴미히가 중앙으로 전진하면서 수적인 열세를 극복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과르디올라의 지도를 받았던 킴미히는 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다. 실제로 소속팀에서 센터백부터 중앙 미드필더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한다. 뢰브는 킴미히의 이러한 능력에 초점을 두고, 3번째 센터백이자, 2번째 수비형 미드필더, 혹은 공을 소유했을 때 풀백까지 볼 수 있는 전술을 설계했다.

글로 푸는 것만큼이나 복잡한 역할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상황 속에 유기적으로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킴미히도 위치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수비 상황에서 자신이 어디에 서야하는지 헷갈이는 모습이었다. 경기 도중 무스타피와의 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무스타피가 킴미히에게 사이드로 이동할 것을 지시하자, 킴미히가 벤치를 가리키며 자신이 중앙으로 와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혼동은 후반에 쥘레가 투입된 뒤에도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뢰브 감독은 쥘레를 킴미히 자리에 세우고, 킴미히를 오른쪽 윙백으로 이동시켰다. 오히려 쥘레의 경우 센터백에 어울리는 선수이기 때문에, 킴미히가 있을 때보다 스리백이 더 진하게 표현됐다.

뢰브의 전술 실험은 포메이션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을 보여준다. 한 가지 포메이션으로 한 경기를 치르는 시대는 끝났으며, 아예 전술을 바꾸는 것도 유행에 뒤쳐졌다. 이제는 ‘공격할 때’와 ‘수비할 때’ 또는 공을 ‘소유했을 때’와 ‘소유하지 않았을 때’ 포메이션이 바뀌고 있다.

이는 독일 뿐만 아니다. 포르투갈도 수비할 때는 4-4-2였고, 공격할 때는 4-3-3으로 변했다. 멕시코도 치차리토가 수비할 때는 사이드에 서지만, 공격할 때는 투톱처럼 전진했다. 일명 하이브리드 포메이션으로 불리는 혼합형 전술의 유행이다. 이미 클럽에서도 과르디올라의 맨체스터 시티를 비롯해 바르셀로나, 도르트문트가 상황에 따라 포메이션을 바꿨다. 그리고 이는 대륙별 챔피언이 모인 컨페더레이션컵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사진 = AFPBBNEWS, TacticalPAD]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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