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옥자’, 봉준호 감독 ‘소녀 3부작’의 완결판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필자가 판단하건대, ‘괴물’ ‘설국열차’에 이은 ‘소녀 3부작’의 완결판이다. ‘괴물’의 현서(고아성), ‘설국열차’의 요나(고아성), ‘옥자’의 미자(안서현)는 각각 한국, 계급, 육식 시스템의 피해자들이다. 봉준호 감독은 시스템의 악순환에 희생되고, 전복하고, 저항하는 소녀들을 통해 시스템 너머의 삶을 꿈꾼다. 그곳은 여전히 디스토피아이지만, 한줄기 희망의 빛이 내리쬐는 공간이다.

괴물-소녀에서 소년으로

괴물은 주한미군이 한강에 방류한 독극물로 탄생했다. 분단체제의 한국사회가 빚어낸 비극의 씨앗이다. 괴물은 현서를 잡아갔다. 아버지 박강두(송강호)는 국가가 구해주지 않는 딸을 찾기 위해 가족과 함께 투쟁에 나서지만, 끝내 딸과 재회하지 못했다.

봉준호 감독은 현서의 희생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현서의 빈자리에 부랑소년 세주(이동호)를 불러들인다. 박강두는 세주를 거둬들여 밥을 먹이고 가족을 이룬다.

박강두가 세주를 품었어도, 현서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점에서 ‘괴물’은 비극이다.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로 소녀 부활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설국열차-인류 최후의 이브

한강변의 송강호-고아성 부녀는 설국열차에 탑승한다. 둘 다 모두 긴 잠에서 깨어난다(부녀는 ‘괴물’에서 이루지 못한 꿈, 그러니까 시스템에 갇히지 않고 자유와 해방을 찾기 위해 ‘설국열차’에 몸을 실었다). 세계는 극심한 기후변화를 겪었고, 소수의 생존자들만 끝없이 달리는 설국열차에 올랐다.

머리칸의 지배계급은 꼬리칸의 혁명을 흡수해 계급 시스템을 유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반복되는 혁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남궁민수(송강호)는 시스템 바깥으로 눈을 돌린다. 그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충실하게 따른다.

“마르크스는 혁명이 세계사의 기관차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쩌면 사정은 그와는 아주 다를지 모른다. 아마 혁명은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잡아당기는 비상 브레이크일 것이다.”

그는 요나와 함께 폭탄을 제조해 열차를 폭발시켰다. 비상 브레이크를 잡아 당긴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요나와 소년 단 둘만 남기고 모두 죽는 것으로 끝났다. 절망도 희망도 아닌 공간에 아담과 이브를 남겨놓았다. 앞으로 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라스트신으로 유추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담과 이브가 동물(북극곰)과 함께 생존한다는 사실이다. 이 세 존재는 더불어 살아갈 것이다.

‘설국열차’의 북극곰은 이제 스크린에서 ‘옥자’의 슈퍼돼지로 환생한다. 소녀와 함께.

옥자-인간과 동물의 상생

미자(안서현)는 10년 동안 슈퍼돼지 옥자와 가족처럼 지냈다. 어느날 세계적 기업 미란다가 찾아와 옥자를 미국으로 데려가고, 미자는 옥자를 되찾기 위해 모험에 나선다.

‘옥자’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육식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것. 극 후반부의 끔찍한 도살장면은 육식 시스템이 얼마나 잔인하게 유지되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이 시스템을 전복할 수 있겠는가. ‘설국열차’에서 시스템 혁명을 일으킨 봉준호 감독은 현실과 타협한 것으로 보인다. ‘설국열차’가 반(反) 자본주의적이라면, ‘옥자’는 반(半) 자본주의적이다. 미자가 옥자를 되찾기 위해 시도하는 방법은 얼마나 자본주의적인 해법인가.

‘괴물’의 현서는 죽음을(그러나 아버지는 소년을 얻었다. 여기에 희망이 숨쉴 것이다), ‘설국열차’의 요나는 불명확한 미래(그래도 소년, 동물과 함께 희망을 찾아 나설 것이다)를 맞이했다. 봉준호 감독은 ‘소녀 3부작’ 마지막 편에서 좀더 긍정적인 결말을 내놓는다.

그는 소녀 미자에게 ‘행복’이라는 이름의 명확한 희망을 선물한다. 봉준호 감독이 ‘괴물’ 때부터 소녀에게 꼭 주고 싶었던 선물일 것이다.

[사진 제공 = 쇼박스, CJ엔터터엔먼트, 넷플릭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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