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록의 나침반] 수란의 새 앨범은 계란이다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지금 말하고자 하는 수란은 수란(水卵)이 아니다. 가수 수란(SURAN)이다.

수란에게 계란을 받았다. 새 앨범 '워킹(WALKIN') 음악감상회를 연 수란은 기자들에게 신보 한 장과 계란 두 개를 선물로 주었다. 왼쪽 계란에 '수', 오른쪽 계란에 '란'이 적혀 있었다.

삶은 계란이었다. 날계란일지 걱정됐는데, 안심했다. '수란이 준 계란'이라며 고이 가방에 넣어 퇴근하다 만원 지하철 안에서 터지기라도 했다면, 톡톡히 망신당하거나 "이것은 제 계란이 아닙니다! 믿어주십시오! 계란에 주인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라고 잡아뗄 뻔했다.

수란의 음악은 계란이다. 물론 수란(水卵)도 계란이다.

계란은 참 신기하다. 요리 재료이나, 날 것으로 먹어도 그 자체로 하나의 음식이다. 삶아서 먹으면 퍽퍽해도, 소금 콕 찍어 먹으면 퍽 먹을만하다. 프라이팬에 납작하게 구워먹을 땐 제법 고소한데, 흰자가 살짝 거뭇해졌을 때의 맛이 다르고, 노른자를 완전히 익히느냐, 반만 익히느냐, 아예 안 익히느냐에 따라 식감이 제각각이다.

계란 넣은 라면 국물을 냄비 들고 단숨에 들이켜면 자극적인 맛이 부드럽게 감싸지고, 볶음밥에 얇게 부친 계란 하나 덮으면 전혀 다른 풍미의 오므라이스로 변한다. 제빵에도 빠지기 어려운 게 계란이다. 자그마한 알이 가진 거대한 융화력이다.

사실 과거 수란의 음악은 계란보다 수란(水卵)에 가까웠다. 껍질을 깬 계란을 국자 따위에 담아 끓는 물에 넣어 흰자만 익히는 수란은 낯설기도 하거니와 계란 요리 중에서도 만들기 꽤 까다로운 요리로 손꼽힌다. 섣불리 접근하면 흰자가 물에 풀어져 모양을 망치거나 익힘의 정도를 그르치기 일쑤다.

수란은 새 앨범 음악감상회에서 "그간 제 음악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 부분을 많이 받아들이고 생각하며 앨범을 만들었다"며 "편하게 들어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번 앨범 '워킹'으로 수란의 음악은 비로소 계란다워졌다. 전자음이 주도하는 곡부터 가벼운 느낌의 힙합 스타일은 물론이고 재즈 분위기의 노래까지, 앨범에 실린 다섯 곡은 수란 특유의 목소리를 만나 제각각 다른 맛을 내면서도 '수란'이란 공통된 감성으로 뭉쳐진다.

이미 히트한 '오늘 취하면'에서 함께한 슈가, 창모 외에도 여러 뮤지션과 같이 작업하며 수란의 융화력은 최대한 끌어올려졌다. 물론 수란의 초창기 음악과 비교하면 함께한 이들의 인지도에 기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그건 진정한 계란의 맛이 아니야!'처럼 말이다.

그래도 이토록 새롭고 다양한 수란의 목소리를 한 장의 앨범으로 한껏 음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보 '워킹'은 가치 있다. 마치 생경한 '수란(水卵)'을 처음 맛봤을 때 혀 끝에 느껴진 묘한 감촉처럼 말이다.

[사진 = 밀리언마켓 제공-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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