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언노운 걸’, 안티고네의 윤리는 언제나 옳다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다르덴 형제 감독의 ‘언노운 걸’이 안티고네의 윤리를 다룬다는 한창호 평론가의 분석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한 가지만 덧붙이고자 한다.

‘언노운 걸’의 의사 제니(아델 하에넬)는 한밤 중 누군가 병원 문을 두드리자 진료가 끝났다는 이유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다음 날 병원 문을 두드렸던 신원미상의 소녀가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 제니는 죄책감에 사로 잡힌다. 그는 안티고네처럼 죽은 소녀의 이름을 찾아주고, 제대로 매장하기 위해 소녀의 행적을 찾아 나선다.

제니의 행동은 안티고네가 오빠의 장례를 치러주고자 하는 마음과 일치한다. 오이디푸스 왕이 죽자 테베의 왕은 큰아들 에테오클레스가 물려 받았다. 앙심을 품은 둘째 아들 폴레네이케스가 반역을 일으켰고,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일대일 대결을 벌이다 모두 죽었다.

새로운 왕이 된 외숙부 크레온은 반란을 일으킨 조카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를 들판에 버리고 매장을 금지시켰다. 장례를 금지하는 왕명을 어긴 자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이디푸스의 맏딸이자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의 동생인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르기로 결심한다.

안티고네는 왕의 실정법을 지켜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크레온 왕의 아들이자 약혼자였던 하이몬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었다. 안티고네는 결국 바위굴에 갇혀 자살했고, 이를 슬퍼한 하이몬도 목을 맸다. 충격을 받은 왕비마저 목숨을 끊었다.

‘안티고네’의 비극은 실정법과 자연법이 충돌했을 때, 자연법이 상위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티고네는 “왕의 법이 확고한 하늘의 법을 넘어설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한다.

안티고네는 하늘의 윤리를 지켰고, 실정법의 원칙을 강요한 크레온은 비극을 맞았다.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결국 ‘악순환의 고리’로 묶였다.

제니 역시 실정법과 불편한 관계에 놓인다. 경찰은 더 이상 조사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불량배는 침묵을 지키지 않으면 신변에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협박한다.

제니는 죄책감이 불러 일으킨 양심의 목소리를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소녀의 이름을 찾아줬다. 그의 행동은 가해자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고, 숨진 소녀의 자매를 뉘우치게 했다. 제니의 ‘안티고네 윤리’는. 소포클레스의 비극과 달리, 누구에게도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순환의 고리’로 작용했다.

소포클레스가 안티고네의 선택으로 보여주고자했던 하늘의 윤리는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서 아름다운 결말로 흐른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감사와 경이로움의 마음으로 살았다. 이러한 우주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다르덴 형제는 인류학자 제르맨 틸리옹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언노운 걸’을 만들었다.

“세상엔 누군가 문을 두드렸을 때, 문을 여는 사람과 열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 문을 여는 사람은 문을 두드린 사람이 자신에게 빚을 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반드시 열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면, 당신도 문을 열어줘라.

[사진 제공 = 오드]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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