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공각기동대’, 할리우드적인 너무나 할리우드적인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특징은 ‘존재의 확장성’이다.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어떤 것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의 탄생.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은 인형사와 접속해 전혀 새로운 사이보그로 거듭난다.

그는 바트에게 “이제 더 이상 인형사라는 프로그램도, 소령이라는 여자도 존재하지 않아”라고 선언한다. 어린 소녀의 형상을 한 새로운 존재는 “자, 어디로 갈까…네트는 광대해”라는 말을 남기고 길을 떠난다.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은 ‘블레이드 러너’의 데커드(해리슨 포드)에서 한발 더 나아간 캐릭터다. 데커드가 인간과 리플리컨트 사이에 위치한다면, 새롭게 탄생한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은 인간과 기계의 융합 그 너머 미지의 세계로 뻗어나갔다.

광대한 네트 속에서 언제든 모습을 바꾸며 끝없이 존재를 확장한다는 아이디어는 1995년 당시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린 소녀는 니체의 ‘위버멘쉬(초인)’를 떠올리게 한다. 니체는 굴종하는 낙타, 반항하는 사자를 거쳐 신성한 긍정을 원동력으로 하는 어린아이의 단계로 나가야한다고 설파했다.

“어린아이는 천진무구 그 자체이며 망각이다.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며, 쾌락이다.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시원(始原)의 운동이며 신성한 긍정이다. 그렇다. 나의 형제들이여, 창조라는 쾌락을 위해서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욕구하며 세계로부터 격리된 정신은 자신의 세계를 획득한다.”(‘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공각 기동대’의 어린 소녀는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을 거의 ‘망각’했고, ‘새로운 시작’에 들떠있다. 광대한 네트를 향해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처럼 움직였다. 이 모든 것은 ‘신성한 긍정’이다.

루퍼트 샌더스 감독의 ‘공각기동대:고스트 인 더 쉘’은 원작의 철학을 배제한 채 비주얼을 강조하는데 비중을 뒀다. 화이트워싱(무조건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은 부차적이다. 실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메이저는 사이보그이고, 그녀의 육체적인 형태는 완전히 추정된 것이다. 쿠사나기 모토코와 그녀의 현재 신체는 오리지널 이름과 신체가 아니다. 그래서 아시아 배우가 반드시 그녀를 연기해야한다는 기준이 없다”라고 밝혔다.

영화 버전은 메이저의 정체성 혼란(나는 과거에 누구였는가)에만 집중한다. 이 테마는 할리우드가 좋아하는 설정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물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영화 ‘페이스 오프’‘로보캅’등을 떠올려보라). 원작 애니메이션이 미지의 세계를 향한 미래지향적 버전이라면, 영화는 뿌리를 찾는 과거지향적 버전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영화 버전이 메이저를 ‘국가기구’에 가뒀다는 점이다. 원작의 어린 소녀가 공안9과 소속에 얽매이지 않았던 반면, 영화의 메이저는 이전보다 더 국가에 종속됐다. 국가는 ‘새로운 존재’를 테러 진압용으로만 활용한다. ‘어디에도 가지 못하도록’ 국가의 시스템 안에 묶어놓았다.

그에게 자유란 없다.

[사진 제공 = 파라마운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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