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리뷰]도재명의 우울한 열정, ‘토성의 영향 아래’

[김성대의 음악노트]

“우울증 초기 상태 벤야민에게는 학교에서나 어머니와 산책할 때나 고독이 인간의 유일한, 적합한 상태로 보였다. 방안에서 고독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거대 도시 내에서 고독, 자유롭게 몽상하고, 관찰하고, 숙고하고, 떠도는, 한가히 산책하는 사람의 분주함을 말하는 것이었다.” 수전 손택 ‘우울한 열정’에서

앨범 제목 ‘토성의 영향 아래’는 미국의 명비평가인 수전 손택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서구 아방가르드 지식인 일곱 명을 놓고 쓴 통산 세 번째 에세이 ‘우울한 열정’의 원제(Under the Sign of Saturn)를 가져다 쓴 것이다. 도재명은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이 책에서 우울하고 우회적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고 그 느낌을 그대로 자신의 음악에 대입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멀게는 로로스 활동 이전인 10년 전까지 시계를 돌려야 하는 곡도 있는데 바로 이자람이 피처링 한 ‘토성의 영향 아래’이다.

곡 ‘토성의 영향 아래’는 도재명의 말로 “말도 안 되는 꿈 같은 이야기들”이지만 동시에 “우울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표정한 피아노, 침묵 같은 내레이션, 난무하는 은유, 그 사이를 구르는 슬로우 드럼, 그리고 과거 곡 ‘비행’ 같은 록킹한 반전이 있다. 이렇듯 고요와 격정의 부침 속에 도재명의 정체는 녹아 있다. 그는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더욱 쓸쓸해지려는 음악을 들려준다. 시리고 아득했던 시규어 로스의 ‘Agætis Byrjun’이 밴드 시절을 지나 여전히 그의 중요한 창작 동력인 듯 한건 그래서이다.

그리고 여백. 중창을 가미한 ‘여로에서’, 남상아와 함께 짙은 고독에 갇힌 ‘10월의 현상’, 그리고 ‘Sonate De Saturne’을 비롯 일련의 연주곡들을 통해 도재명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비워내려 한다. 비운다는 건 또한 채웠다는 얘기다. 가령 '하얀거탑'의 클라이막스에 어울릴 법한 ‘Diaspora’의 클래식적 들썩임, ‘미완의 곡’이 뿜어내는 성가대의 곡성, 정차식만이 부를 수 있었다는 ‘오늘의 일기’ 속 까마득한 혼돈은 모두 채우는 것이다. 그렇게 비우고 채우는 과정에서 이르는 양극 세계의 공존 또는 화해. 술렁이는 재즈 드러밍이 귀신같은 소리 안개를 휘젓는 ‘Un Triste’은 바로 그 비움과 채움의 중간이요 균형이다.

이렇듯 도재명의 음악은 언뜻 극단의 고립만을 지향하는 듯 보여도 뜯어보면 그 안에는 타협의 여지도 분명 있다. 재킷을 장식한 시커먼 바다는 막연한 삼라만상을 집어삼킬 듯 구체적이지만 ‘토성의 영향 아래’ 흑백 뮤직비디오의 비밀스러운 몸짓은 모든 걸 토해낸 듯 투명하다. 음악에선 록에서 벗어난 오케스트라를 전면에 내세웠고 감정 면에선 누군가에게 자신의 음악이 위로가 되길 바라는 것. 에둘러 가는 도재명 음악이 남긴 유일한 직설은 바로 이것이다.

[사진제공=ORM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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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웹진 음악취향Y, 뮤직매터스 필진

대중음악지 <파라노이드> 필진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국내)’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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