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토니 에드만’, 유머의 힘으로 다시 태어나라!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토니 에드만’에서 이네스(산드라 휠러)는 생일을 두 번 치른다. 첫 번째는 미리 당겨서 치르는 파티이고 두 번째가 진짜 파티이다. 이 과정에서 이네스는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계기와 맞닥뜨린다. 보다 인간적으로, 유머와 함께!

유명 컨설턴트 회사에 다니는 이네스는 루마니아에서 일하다 미리 생일을 치르기 위해 독일의 엄마 집에 온다. 아내와 이혼하고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아버지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는 초대 받고 왔지만, 정작 누구 생일인지 모른다.

이네스는 일하는 척 하며 걸려오지도 않은 핸드폰으로 통화한다. 딸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을 눈치 챈 빈프리트는 조만간 루마니아로 갈 것이라고 일러둔다. 전반부에 등장하는 생일은 이네스와 빈프리트가 서로 소통하기 힘들어하는 사이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딸의 진짜 생일을 축하해줄 일이 남았다.

루마니아에서 이네스를 만난 빈프리트는 딸이 정유회사의 구조조정을 책임지고 해고를 단행하는 일을 떠안았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네스는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 인간으로 변했다. 승진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기세다.

전후세대의 휴머니즘과 리버럴한 성향을 갖고 살아온 빈프리트는 딸을 위해 가발을 쓰고 의치를 낀 채 토니 에드만으로 변신한다(마렌 아데 감독은 토니 에드만의 이름을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에게서 가져왔다. 카우프만은 ‘토니 클립톤’이라는 가명을 쓰고 관객을 모독하고 무대에서 소란을 피웠던 괴짜 코미디언이었다). 토니 에드만으로 변신한 빈프리트는 딸의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인생 코치라고 설명한다. 그렇다. 딸에게는 인생 코치가 필요하다.

빈프리트의 인생 철학은 치즈 강판에 치즈를 잘 갈아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비슷하다. 치즈 강판을 제대로 사용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 이네스가 친구들과 마약 파티를 할 때, 그는 자신의 머리 위에 치즈를 간다. 편안한 마음은 마약에서 얻을 게 아니라 치즈 강판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마치 시위를 하듯 보여준다.

빈프리트는 이네스와 함께 이전에 파티에서 만난 어떤 여인의 가정집을 방문한다. 그가 이 집을 방문한 이유는 부활절 달걀을 예술품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딸에게 달걀에 그림을 그리라고 권유하더니 느닷없이 휘트니 휴스턴의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을 부르게한다. 이네스가 어렸을 때 빈프리트의 피아노 반주에 즐겨 부르던 노래다. 이네스가 노래를 부를 때 그 뒤편에는 예술품으로 장식된 부활절 달걀이 매달려 있었다. 아버지는 딸이 유머 감각을 갖고 인간적으로 부활하기를 바랐다.

아버지의 일방통행식 유머에 진절머리를 내는 이네스도 서서히 유머 감각을 받아들인다. 애인과 정사를 나눌 때 치즈강판에 치즈를 뿌리는데서 착안한 듯한 행위를 시키는가 하면, 자신의 진짜 생일에는 느닷없이 나체 파티를 제안한다. 토니 에드만의 유머는 그의 삶에 조금씩 영향을 끼쳤다.

빈프리트는 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털복숭이 불가리아 민속 인형 쿠케리를 입고 나타난다. 불가리아인들은 쿠케리가 악령을 내쫓는다고 믿는다. 아버지는 외국의 털복숭이 인형을 빌려서라도 딸의 내면에 깃든 신자유주의의 악령을 쫓아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딸의 가치관은 바뀌었을까. 이네스도 아버지를 따라 의치를 끼고 모자를 써보지만, 그것이 온전한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쓸쓸한 상념에 젖어 있는 이네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극 초반부 아버지에게 행복 따위에 관심 없다고 툭 던지듯 말했던 그는 행복의 의미를 찾을 것인가. 그가 어떤 길을 갈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네스의 마음에도 어느새 유머의 힘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진 제공 = 그린나래미디어]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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