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해남군] 국제 보호 조류 가창오리들의 낙원, 해남 고천암호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호수에서 펼쳐지는 30만 마리 철새들의 비상이 장관을 이룬다.

둘레 14킬로미터, 무려 40리 길에 이르는 호수 주변이 무성한 갈대밭이다. 특히 해남읍 부호리에서 화산면 연곡리까지 3킬로미터 남짓은 갈대밭 넓이만 165만 제곱미터로 국내 최대 갈대 군락지로 꼽힌다. 그러니 겨울에 철새들이 이곳까지 찾아와서 쉬었다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미 국제 보호 조류로 지정된 가창오리는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개체수의 대부분인 98퍼센트가 해남 땅 고천암호로 날아와 겨울을 나고 간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호수와 몸을 숨길 수 있는 갈대밭, 호수 주변의 광활한 갯벌, 그리고 간척지 논에 추수 후 흩어진 곡식 낟알은 철새들에게 더없이 좋은 먹이다.

새들에게 매력적인 고천암호는 쉴 곳 없어 방황하는 도시인들에게도 역시 좋은 피난처이자, 생명의 의미를 깨닫고 재충전할 수 있는 곳이다. 겨울바람에 쓰러질 듯 일제히 한 방향으로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절규하는 갈대의 함성이 가슴에 그대로 날아와 꽂히니, 그것만으로도 황량한 겨울 들녘은 따스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겨울철 진객인 가창오리까지 있으니, 고천암호는 이래저래 한 번쯤 찾아가 봐야 하는 명소임에 틀림없다.

특히 하루 중 일몰 무렵 단 한차례, 30만 마리에 가까운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라 선회 비행을 하는 모습은 대자연이 빚어내는 장엄한 생명의 서사시다. 그 아름다운 군무를 바라보면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초 이래로 이루어져 왔으며, 또 그렇게 이루어져 갈 우주의 섭리를 엿보는 듯해 짜릿한 전율이 등줄기를 스친다.

최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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