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토토가'의 기적, 추억은 힘이 세다 [이승길의 하지만]

[마이데일리 = 이승길 기자] MBC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가 만든 풍경들.

3일 저녁, 길거리 TV 앞을 지나던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토토가'를 시청하는, 월드컵 때나 일어날 법한 광경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자연스럽게 이날 밤 8090 시절의 노래를 주로 선곡하는 주점은 불야성을 이뤘다.

온라인 음원사이트에서는 SES 'I'm Your Girl'과 지누션의 '말해줘', 엄정화의 '포이즌', 터보의 'Love is'가 1위를 놓고 다퉜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음악프로그램을 휩쓸던 곡들이 2015년 1월 에이핑크의 'LUV', EXID의 '위아래' 등 까마득한 후배의 곡과 진검승부를 벌였다. 한 네티즌은 이런 상황에 “펠레와 마라도나가 현역으로 돌아온 것 같다”는 소감을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대박난 일요예능이 아니면 어렵다 여겨지던 20%의 고지를 넘어선 '무한도전'의 3일 시청률 22.2%(이하 닐슨코리아 전국기준) 기록. 이날 '토토가'가 기록한 시청률은 지난 2008년 2월 16일 방송분(27.4%) 이후 약 6년 10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기록이었다.

'토토가' 열풍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방송 직후에는 노래방으로 향한다는 시청자들의 SNS 글이 넘쳐났고, 사람들의 대화에는 저마다의 1990년대에 관한 회상이 담겼다. '무한도전'이 장난스럽게 만들어 놓은 타임머신은 시청자들을 정말 1990년대의 한복판으로 이동시켜 놨다.

물론 '토토가'가 다룬 1990년대가 마냥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가요계의 르네상스는 환란이라 불리는 IMF와 맞닿아있다. '토토가'에 울고 웃은 이들은 그 시절 취업난으로 소주잔을 기울이던 당사자였고, 직장을 잃고 괴로워하는 이의 자녀이기도 했다. 연일 암울한 소식으로 가득한 뉴스 속에 잠깐이나마 대중의 마음을 달랜 것이 노래였다.

그리고 위로한 이와 위로받은 이들이 1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재회한 것이 '토토가'다. 당시 가수에 환호하던 이들은 어느새 사회인, 부모, 장년 등의 수식어를 갖게 됐고 그만큼 가수들도 변했다. 요정 SES 슈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됐고, 터보 김정남은 방송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아빠가 된 쿨 김성수는 딸에게 자신의 무대를 선물하고픈 꿈을 키워왔다. 나처럼 하루하루를 만만치 않게 살아온 그 시절 오빠, 언니, 누나, 형과의 만남. '토토가'는 그래서 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20년 후에도 '토토가'가 가능하겠냐는 말로 지금의 가요계를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KBS 1TV '가요무대'와 '콘서트7080'이 '토토가'에 앞서 그런 역할을 해왔듯 음악은 그 때도 변함없이 대중을 추억에 잠기게 할 것이다. 가수 아이유의 '좋은 날' 3단 고음에 전율할 수도 있고, "쏘리 벗 알러뷰"를 외치며 아이돌그룹 빅뱅의 '거짓말'을 떼창할 수도 있다. 또 '그 시절'의 패션이라며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 걸그룹 소녀시대의 'GEE'를 따라 부를 것이다. 언제 어느 시점이건 음악은 추억을 회상하고, 현재를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MBC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사진 = MBC 방송 화면 캡처]

이승길 기자 winning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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